교회
2011.10.16 13:23

(교회 9강) 교회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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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35-39http://onlycross.net/videos/church/mar-013539.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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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설교>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에서 ‘민족 복음화’라는 말이 흔하게 외쳐지는 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회 등을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도 제목이 되었고, 교회의 사명 또한 민족 복음화라고 생각합니다. 좁게는 교회가 위치하는 마을 또는 도시로 시작을 해서 내 민족, 그리고 세계로까지 뻗어나가 복음화를 이루자는 외침을 사명심이 투철한 신앙인의 증표로 여길 정도입니다.

 

 

하지만 민족 복음화라는 외침은 성경과는 상관없는 인간의 헛된 망상일 뿐입니다. 이러한 말이 예수님이 맡기신 교회의 사명을 외면하는 것이며 믿음이 없는 자의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이해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는 ‘민족 복음화’란 사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철저하게 선택과 부르심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선택과 부르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전부를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민족 복음화’역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 됩니다.

 

 

‘민족 복음화’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인간이 선악과를 먹는 것을 막았으면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구원하시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누구든 십자가를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은 구원이 모든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만 허락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믿음을 주실 때만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기는 하지만 복음화를 사명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하나님이 택한 자를 부르기 위한 것이지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복음화, 즉 전도를 통해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는데 두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전도에 효과적인 방법의 일환으로 봉사활동과 사회사업에 힘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존재 이유와 사명이 진심으로 복음화에 있는지를 예수님의 말씀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37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모든 사람들이 주를 찾는다는 말을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주를 찾았던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그 외에도 많은 병과 귀신을 쫓아낸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주를 찾았다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같은 일에 매료된 사람들이 예수를 찾는다면 그것을 기회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따르도록 선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로 가지 않습니다. 38절에서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사람을 피해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을 피하여 다른 마을로 가신 의미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나를 찾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을 예수님을 찾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예수님의 용서가 아니라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원해서 찾았던 것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과 믿음이 아닌 것을 분별할 수 있고 전도와 전도가 아닌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사람을 피하여 다른 마을로 가시고 거기서도 전도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을 보면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 오셨고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의 사명은 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한 전도의 의미를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하고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전도도 그와 같을까요? 같다면 말한 대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을 피해 다른 마을로 가신 것은 전도의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됩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전도를 하시고 이를 위해 오셨다고 하신 전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전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훈에 놀라게 되는데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를 쳤는데 예수님이 귀신에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시자 귀신이 쫓겨 가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전도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가 어떠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놀란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는 귀신도 순종할 수밖에 없는 권위임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권위자, 능력자로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 예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하기 위함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예수님을 찾는 것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말씀의 권위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39절에 보면 예수님은 회당에서 전도하실 때면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말씀의 권위가 어떠한가를 증거하신 이것이 예수님의 전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말씀을 권위를 증거하는 방식으로 전도를 해야 할까요? 이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전도의 사명이라면 예수님은 사명과 함께 우리에게도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동일한 전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교회의 사명에 대한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이 전도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교회가 예수를 전해서 믿게 하는 의미의 전도도 사명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교회로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 때문에 사회적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외적으로는 바람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교회의 사명이라는 관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으로 교회됨을 보여주고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어 전도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발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알아가고 예수가 구원자이심을 믿는 믿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도 복종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고 그 권세로 우리를 죄에서 구출하신 구원자이심을 믿는 믿음에 집중하도록 돕고 그것을 위해서 죄에 붙들려 살아가고 귀신에게 장악되어 있는 인간의 실체에 대해 증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권세가 어떤 것인가를 안다면 세상의 권세는 권세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우리를 죄에서 구출할 수 없고 귀신에게 장악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 교회이며,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증표로 사용하신 병 고침에 마음을 두고 예수님을 찾는 자들로부터는 떠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육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지 말라는 말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사람들을 무작정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떠나신 것으로 드러났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귀신의 권세 아래 있는 자를 구출하시는 권세 있는 예수님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죄 아래 있는 인간의 현실을 증거하면서 우리를 죄에서 구출하신 권세자로 오신 예수님을 찾도록 하는 것이 전도며 사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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