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011.10.30 13:13

(교회 11강) 교회와 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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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11-12http://onlycross.net/videos/church/eph-0411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설교>

 

현대 교회 내에서 직분은 그 성경적 의미를 상실 한 채 표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예 직분에 대한 성경적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직분자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충성과 봉사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그것도 직분자를 허울뿐인 신앙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묶어 놓은 채 가정 일보다는 교회 일을 우선하라 하고, 교회 일에 시달려 몸이 피곤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피곤치 않게 해주시며 복을 받고 천국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라는 성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허황된 말로 교인들을 현혹하여 목사의 말에 장단 맞춰 춤추게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가 요구하는 직분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교회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일 것이고, 교회가 여러 가지 사업으로 돈을 필요로 할 때는 집을 팔아서라도 헌금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고, 목사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직분자도 그런 사람이겠습니까?

 

 

직분을 둘러싼 현대 교회의 파행은 일찌감치 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나 권사, 안수 집사 등의 직분을 맡을 때 돈이 없이는 안된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직분을 맡으면서 교회에 일정 액수의 헌금을 하거나 고가의 물품을 헌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아예 당연한 절차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직분을 맡는 자에게 공공연하게 헌금을 요구하는 것이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까?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때문에 교회가 오히려 직분을 맡는 자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옳을 것이고, 그렇다면 직분을 맡는 자가 교회에 헌금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으면서 교회에 헌금을 한다면 그것은 직분을 자신의 명예나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당신에게 장로라는, 또는 집사라는 명예를 주니까 그 댓가로 돈을 내시오’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직분에 돈이 개입됨으로써 교회가 때로는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직분자를 세우는 일도 허다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직분을 사고파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라는 명칭이 등장합니다. 이 명칭은 직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교회에 세움 받은 이 직분의 의미는 성도의 온전함을 위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습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목사로 교사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골 1:25절에 보면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자신이 교회의 일꾼 된 것을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세우신 직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를 위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으로 말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 무엇일까요?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유대교 신앙이지 복음 안에서의 신앙은 아닙니다.

 

 

말씀을 이룬다는 의미는 28절의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는 말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웁니다. 이것이 말씀의 완성입니다. 사도가 말씀을 가르치는 것도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한 것이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도를 교회의 일꾼으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움 받는 것은 예수님의 용서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예수님의 용서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죄를 보게 하고 예수님의 피 흘리신 은혜만이 죄에서 건짐 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용서의 세계를 누리게 하는 것이 말씀이기에 이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 받은 이유이고, 이것이 직분의 의미입니다. 사도는 자신이 이 일을 위해 일꾼으로 세움 받았음을 알았고 그래서 오로지 그리스도를 전하여 권하고, 그리스도의 지혜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모든 소원을 두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굳이 목사의 일로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목사라는 직책만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를 따로 구분하여 언급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부름 받은 자리라는 것에는 동일합니다. 모두가 말씀의 도구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모든 직분은 앞서 말한 대로 성도의 온전함을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이름이나 내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의 온전함을 위해 도구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자는 그의 능력이나 자격을 보고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교회에서 직분자는 사회적인 위치나 능력 등이 작용하여 세워지지만 그것을 보면 우리가 사람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사람을 볼 때 사회적인 위치와 능력이라는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말씀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세움 받은 직분자의 자리에 있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직분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을 딤전 3장에 등장하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딤전 3:2-4절과 8,9절에서 사도가 언급하고 있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보면 거의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사실 어디에서도 이러한 수준의 직분자를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는 이런 수준의 사람을 직분자로 세울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딤전 1:12절에 보면 사도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직분을 맡기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도가 말하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놓고 본다면 사도는 자신을 그 자격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일컫습니다. 결국 죄인 중에 괴수에 지나지 않은 자신에게 직분을 맡기셨다는 뜻인데 왜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그처럼 완벽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딤전 1:16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이 그리스도의 긍휼을 입었음을 말하면서, 긍휼을 입은 까닭을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즉 긍휼의 본을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긍휼을 입히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직분을 맡기신 예수님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직분의 의미를 자신의 재주와 능력으로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긍휼의 본을 보임으로써 긍휼을 나타내는 도구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완벽의 수준으로 말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직분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격이 없는 자에게 직분이 주어진 것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 직분이란 자신을 보여주고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도의 온전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것이기에 성도를 위한 봉사의 일은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이 서로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직분자로서의 봉사의 일이라는 것을 주지하셔야 합니다.

 

 

교회는 어떤 성과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직분이나 모든 성도는 교회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의 도구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긍휼을 입은 자답게 긍휼이 여러분의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 일을 위한 직분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 일로 인한 분란은 오히려 직분의 의미에서 이탈된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직분은 교회가 아닌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예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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