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011.11.27 13:52

(교회 15강) 교회와 권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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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15-20http://onlycross.net/videos/church/ma-18152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설교>

교회는 사람이 함께 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항상 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회법에도 죄 문제에 대한 징계 절차로 권징조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법은 권징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을 당회와 노회 그리고 총회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치리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교회에서의 권징은 당회가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를 보면 권징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할 수 있고, 설사 권징이 행해진다고 해도 목사가 자신의 반대자를 축출하거나 자신의 교회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보면 비록 당회가 권징을 행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의 거룩성을 위한 권징이 아니라 당회를 구성하고 있는 목사와 장로의 개인적 감정이나 유불리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권징을 행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한 채 타인의 죄를 징계하는 모순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권징이 사라지는 이유는 권징을 하게 되면 교회를 떠날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로부터 징계를 받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수치가 될 수 있고 분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수치와 분노가 그 사람을 교회에서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권징 자체를 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권징을 행하지 않고 죄에 대해 둔감해짐으로 인해서 교회의 거룩성이 무너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교회가 범죄한 자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형제가 있거든 가서 권고하고 만일 권고를 들으면 형제를 얻은 것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증인을 세워 죄에 대해 권고하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같이 여기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누군가의 죄에 대해 권고하는 이유는 형제를 얻기 위함이지 그 사람을 판단하고 수치스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4절에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말하고 이어서 범죄한 자에 대한 권징의 문제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권징의 의미와 목적이 판단과 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잃은 양을 찾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 뒤에 용서에 대한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 심판을 위한 권징이 아니라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가 증거되기 위한 권징이어야 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권징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참된 권징은 오직 말씀의 능력으로 성령이 행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에 대해 교회가 무관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한대로 죄를 범한 형제가 있다면 권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권고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죄를 깨달음으로써 예수님의 용서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형제를 얻는 것이고 이 일을 성령이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범죄한 자가 있다고 해도 그에게 권고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반응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권고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자존심으로 인해서 반발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어떤 성격 나쁜 특정한 사람의 예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존심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권고와 충고를 형제의 사랑으로, 그리고 그 사람을 내게 보내심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시각이 없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교회에 죄에 대한 권고가 사라지게 되고 단지 친분관계만 유지되는 인간의 모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범죄한 자를 용납한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그 중에는 교회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음행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음행은 아비의 아내, 즉 계모를 범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지탄을 받아 마땅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회는 그같은 죄에 대해 통한히 여기지 않고 음행한 자를 그들 중에서 물리치지도 않았습니다.

 

 

통한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어쩌면 그들은 교회로 모이면서도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고 단지 나만 잘하면 된다는 통속적인 사고방식에 묻혀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엄청난 죄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거룩을 위해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예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가 전부인줄로 알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 관계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이 관계를 통해서 주의나라가 어떤 것인가가 증거되기 위해 교회라는 관계로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신자를 교회라는 관계로 연결하심으로써 서로 돕는 것을 통해서 함께 거룩한 길을 걸어가며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때문에 형제가 어떤 죄를 범하든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돕고자 하는 마음도 없는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죄를 행한 형제를 권고할 마음이 없다는 것은 자신 또한 누군가의 권고도 듣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세워 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권고할 줄 아는 것이 곧 사랑이며 형제를 돕는 것이고 자신 또한 그러한 도움을 함께 한 형제로부터 항상 받을 필요가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안다면 죄에 대해 무관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음행을 용납한 고린도 교회를 크게 책망한 것입니다.

 

 

권징을 교회법에서 정한 권계, 견책, 근신, 정직, 면직, 수찬정지, 제명, 출교 등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권징하는 것은 말씀의 능력이며 따라서 신자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사실 권징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라는 말씀처럼 말씀은 항상 우리의 생각과 뜻의 잘못됨을 판단하며 회개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참된 권징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는 지상에 독립된 교회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권세와 연결된 관계에 있습니다. 이것을 18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하늘의 권세와 연결되어 있기에 세상의 권세에 종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것으로 권세를 삼고자 해서는 안되는 거룩한 종말론적 공동체이기 때문에 세상의 의미를 두고 세상의 것으로 교회의 권세를 삼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는 이같은 죄를 철저히 배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나아가야 할 거룩한 길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워서 말씀을 전하셨고 신약에서는 사도를 세워서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선지자와 사도의 증거를 듣지 않고 거부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분들 곁에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된 형제를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즉 여러분께는 서로서로가 선지자요 사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형제의 권고를 듣지 않는 것은 하늘의 권고를 거부하는 것이 됨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체의 관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권징에 대해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죄를 심판하고 벌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체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함으로써 형제를 얻기 위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주의 말씀을 온전히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권징은 말씀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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