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1.16 19:37

(성령 1강) 성령이 임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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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8http://onlycross.net/videos/spirit/act-01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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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설교>

현대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신앙의 여러 양상들을 보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변질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오심을 성경에 근거하여 바르게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신앙이 체험적이며 윤리적이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현대 교회에 확산되어 있는 ‘성령치유집회’라는 것도 잘못된 성령론을 근거로 하면서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병 고침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며 성령의 능력이고 확실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육신적 시각에서 보면 그것처럼 확실하고 체험적인 것이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추종을 하게 되고, 목사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을 자극하여 교회로 모으는 일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 부흥이라는 한 방편으로 추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자가 성령을 받게 되면 성품이 변화되고 교회 생활에서도 예전보다 더 열심이 있게 되고 행동 또한 달라진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인간이 개조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착해지고 윤리적이며 인격적인 변화까지 뒤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성령 충만, 거듭남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러한 성령 체험을 원하기도 합니다. 성령 받음을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음의 증거로 방언을 강조하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성경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성령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대 교회의 실상을 보면서 성령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어 오늘부터 성령을 주제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절)는 구절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선교를 강조하는 현대 교회가 기치고 삼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이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면서 남기신 지상명령이라고 하면서 교회는 이 명령을 따라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물론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이 말씀을 그러한 의미로만 이해하게 되면 결국 성령은 선교를 위한 권능, 즉 능력과 힘을 주기위해서 오신다는 뜻이 되버립니다.

 

 

성령의 오심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과 분명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에 왜 굳이 성령이 오셔야만 하는 것입니까? 성령이 오지 않으시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까?

 

 

현대 교회는 예수님의 증인 되는 것을 전도와 선교로 이해합니다. ‘예수 믿으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교회 다니게 하는 것이 곧 증인으로써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러한 전도와 선교는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아무도 타국에 가서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인간의 의지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성령의 오심은 불필요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대 교회는 전도나 선교의 의미를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하는 것에만 두지 않습니다.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도 증인으로 사는 것이고 착하게 사는 것도 증인으로 사는 것이고 세상에서 잘되는 것도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증인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자신을 증인으로 부르셨다는 것과 하나님이 자신을 세워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뜻 아래 있다는 것은 나의 뜻은 부인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뜻을 앞세웁니다.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통해서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고자 하오니 성령의 권능을 주십시오’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이 불러 세우신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나사로가 스스로 거지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역할을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그럴듯한 역할을 원할 것입니다. 나사로와 같은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사용되기보다는 높고 잘된 자리에서 영광을 돌리는 도구로 사용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에 성령이 오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증인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는 부자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고, 누구는 거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다면 거지된 사람은 ‘하나님 저 사람은 부자 되게 하시고 나는 거지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당합니다’라고 반발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라고 말씀하는데 예루살렘이냐 유다냐 사마리아냐는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지를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가게 하신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현재 여러분이 있는 그것, 여러분에게 주어진 그 형편과 환경이 하나님이 보내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부르신 신자를 하나님이 어디로 보내시고 어떤 형편에 있게 하시든 그 땅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보내신 예수님의 뜻입니다.

 

 

만약 성령이 없이 ‘증인이 되어라’는 말씀만 남기셨다면 우리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 내 이름을 높이는 방식으로 증인 되려고만 할 것입니다. 슈바이처 같은 사람이 되어서 예수를 증거하겠다고 하고 성공에서 예수님을 높이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는 성령이 오심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자기중심적 생각이야 말로 죄에게 지배 받고 있는 인간의 악한 속성임을 깨닫게 되고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 예수를 증거하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하나님의 원수된 사고방식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신자는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 자신에게는 과분한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다만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 수 있기를 소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인은 우리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인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되리라’는 말과 ‘되어라’는 말의 의미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성령이 왜 오셔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너희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신자는 인간은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기를 부인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을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면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의지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인간에게서 이 같은 증인의 모습은 절대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권능은 병 고침이나 귀신을 쫓아내고 방언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적 시각에서는 불평과 원망이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기뻐하는 그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증인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고전 4:19-20). 여기서 말한 능력은 사도가 매를 맞고 옥에 갇히면서도 기뻐하고 예수님을 증거했던 것처럼, 어떤 형편과 처지가 된다고 해도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인됨을 위해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 받은 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권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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