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3.27 17:31

(성령 10) 성령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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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18http://onlycross.net/videos/spirit/eph-0518.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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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설교>

성령에 대해서 말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을 받되 충만히 받아야 신앙생활을 더 힘 있게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의 상태를 경험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기쁨과 황홀함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이 과연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신자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그 마음은 늘 기쁨과 평화로 가득하면서 근심 걱정이 없는 그야말로 사람들이 꿈꾸는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만약 성령 충만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분명 성령을 받는 것으로 그치면 안되고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령 충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성령으로 충만해진다고 해도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전히 세상의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현실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성령을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 성령으로 충만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다만 구별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다가오는 그러한 문제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무엇을 깨닫게 되느냐에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믿는 자와 믿지 않은 자가 동일할 수 없고 성령으로 충만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성령으로 가득 채워지는 상태가 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성령은 말 그대로 영이기 때문에 가득 채워지고 덜 채워지는 것은 없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그것이 곧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지 조금 부족하게 받은 미완성의 상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령 충만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생활이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힘이 있다거나 열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성령 충만을 성령으로 가득한 상태로 이해하고 있고, 성령으로 가득하다면 그에 따른 외적인 증거가 필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그에 따른 표적과 기사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주로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밋밋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신앙 상태를 보면서 도무지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말할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을 보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을 술 취한 것과 대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먼저 술 취한 것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가 술 취함을 어떤 의미로 말하는가를 알게 되면 자연히 성령 충만에 대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사도는 술 취한 것을 방탕한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술 취한 것을 가지고 방탕하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물론 한국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보면 신자가 술 취한 것이 방탕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화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신앙과 연결하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도가 술 취한 것을 방탕한 것으로 말했기 때문에 술을 마시되 술에 취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사도의 의도에서 아예 벗어나 있는 말일 뿐입니다.

 

 

지금 사도는 술을 마시고 마시지 않는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빛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술을 마시고 마시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나라에서 신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통념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술 마시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보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사도 당시의 유대 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술을 마셔도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는 본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는 술 취한 것을 방탕한 것으로 말하지만 사실 술 취했다고 해서 그것을 방탕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여러 이유로 술을 마십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다 보면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취하지 않았을 때는 방탕한 것이 아닌데 취하면 방탕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쉽게 납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사도는 성령 충만을 술에 취해 사는 것과 대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모두가 술을 마시고 마시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술에 취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 상태는 누군가의 다스림에서 벗어난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누구의 말을 듣지도 않고 통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본성에서 나오는 대로 행동해 버립니다. 이것을 사도는 방탕한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탕자 이야기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뜻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아 자신의 길을 떠났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간섭과 다스림이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둘째 아들의 방탕이었습니다. 즉 방탕의 중심에는 누구의 다스림도 받지 않고 다만 자신을 위해 자기 힘으로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는 술 취한 것으로 말합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성령 충만이 무엇인가에 대한 윤곽이 조금은 잡힐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술 취함과 대비하여 이해하게 되면 성령 충만은 신자가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즉 성령이 오셔서 나를 장악하신 상태를 성령 충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내게 오시고 그 영으로 다스림을 받는다면 신자의 속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자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게 되고 그 은혜를 높이며 자랑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자신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깨달으며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 자신의 본분임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께 모든 마음을 두게 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십자가로 인해서 증거된 하나님의 일에 대해 인간이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알 수 없고 오직 하늘의 지혜가 주어져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십자가로 증거된 하나님의 일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알았을 때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한 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감사와 예수님의 피로 인한 용서의 기쁨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신자는 십자가에 마음을 두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충만한 신자에게서는 자신의 실천으로 믿음 있는 자가 되고, 그것으로 자기 신앙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마땅한 것은 죄인으로서 저주의 자리일 뿐임을 알고, 저주의 자리에서 저주의 자리에 있는 자신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자로써 그에 마땅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신자로서의 마땅한 삶은 은혜와 사랑에 대한 신자의 절실한 깨달음에 의한 자연적인 것입니다.

 

 

신자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다면 신자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신자의 의지와 노력은 자연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러한 신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예수님의 은혜로 감사하고 만족할 것이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것이 술 취하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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