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5.29 17:00

(성령 19강) 생명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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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2:13-21http://onlycross.net/videos/spirit/luk-121321.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설교>

 

예수님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를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부자의 어리석음은 오늘밤에 그 영혼을 도로 찾으면 그가 준비한 것은 그의 것이 될 수 없는데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창고에 여러 해 쓸 물건을 가득 쌓아두고 그것으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미래를 생각하며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이 부자를 예수님 말씀처럼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만약 우리 역시 부자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삶은 부자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부자가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자와 같은 생각과 방식으로 사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부자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곧 부자라는 생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써 어느 해에 수확이 크게 늘어 기존의 곳간으로는 보관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큰 곳간을 짓고 소출과 물건을 보관합니다. 그리고 부자는 곳간에 가득한 곡식과 물건을 보면서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생각을 합니다. 노후를 즐기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부자에게서 잘못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부자는 부당하게 재산을 모은 것이 아닙니다. 농부로써 정당하게 소출을 거둔 것입니다. 수확한 많은 소출을 바라보면서 든든한 마음을 갖고, 노후를 편히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현대 사회도 노후 대비에 대해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노후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을 삶의 지혜로 여깁니다. 오히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수확한 것을 흥청망청 써버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미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부자를 어리석은 자로 일컫습니다. 그것은 오늘 죽으면 준비한 것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사람이 오늘 밤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잊고 살 뿐입니다.

 

 

그러면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매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사람이 죽음에 대해 간혹 생각할 수는 있지만 매일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살기는 무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리석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비유의 마지막 결론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절)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부자의 어리석음은 단순히 재물을 쌓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것이 참된 부요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재물을 가득 쌓아둔 것을 부요로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부요에 대한 세상의 이해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물을 쌓아 둔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재물을 쌓아 두고 많은 재물을 소유한 것을 부요로 여긴 것이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요는 곧 많은 재물로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돈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살아갑니다. 마음이 부자라는 말도 하지만 사실 사람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은 재물이 많은 부자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부자라고 해서 먹고 마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부요하다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자가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 부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 재물과 연관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부요하다는 것은 믿음이 좋다는 것이고, 믿음이 좋은 자는 하나님께서 재물의 복도 주신다’면서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부요를 재물의 부요로 연결시키는 억지 주장도 접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성경과 상관없는 말일 뿐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동기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유산 분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찾아왔는데 그에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고 부자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예수님은 사람들의 재물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유산 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의 관심은 형이 받은 유산을 나눠 갖는 것이었고, 형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니 그 일의 해결을 예수님에게 부탁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단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였을 뿐이고, 그것이 바로 세상이 생각하는 다른 예수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안다면, 그리고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을 위해 오셨는가를 안다면 돈 문제가 아닌 생명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께 나온 자로써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육신의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생명의 문제 때문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별 관심없이 다만 기독교인으로 교회를 찾아 나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믿음과 연관된 문제이고 영혼이 살고 죽는 문제이기 때문에 깊이 묵상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게 보면 부자의 어리석음은 유산 문제로 예수님을 찾은 사람처럼 자기 인생을 쌓아 놓은 재물로만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에 영혼을 부르신다면 재물의 문제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다만 생명의 문제, 영혼이 죽고 사는 문제만 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육신이 사는 문제만 생각하고 재물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돈 없이 살아봐야 돈 좋은 줄 알지’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돈 없이 살면 불편하고 힘듭니다. 온갖 설움과 고생을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 실감하게 되는 것은 ‘역시 돈이 최고다’는 것입니다. 신자들까지도 돈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수를 찾는 자로 변모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생명의 문제에 대해 말씀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노후를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문제는 돈과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돈이 있어야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사람들이 꿈꾸는 노후의 편안함과 행복을 누리기 힘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후 문제가 생명의 문제는 아닙니다. 노후라는 것은 인생에서 잠시 동안 겪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문제는 영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생명의 문제는 인생의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생명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재물이 많은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대로 살면 됩니다. 하지만 소유의 넉넉함이 생명의 문제를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보다는 소유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으면서도 십자가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재물만 넉넉해진다면 바랄 것이 없다는 심보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이같은 어리석음에 의해서 결국 멸망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소유가 아닌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생명을 얻은 자이고, 세상의 전부를 가지고도 살 수 없는 생명을 얻었기에 부요한 자입니다. 이 부요를 참된 부요로 알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소유의 문제를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오직 생명의 문제를 지향할 뿐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함께 한 신자입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은 곧 소유가 아닌 생명의 문제에 마음을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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