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1.23 17:08

(성령 2강) 성령 강림

조회 수 53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행 2:1-4http://onlycross.net/videos/spirit/act-02010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설교>

예수님께서 죄인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과는 다르게 성령이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현대 교회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오심을 가볍게 다루게 된 이유는 아마 성령을 체험과 능력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성령의 오심을 방언하게 하고 병 고치는 능력을 부여하며, 믿음에 힘을 주어서 좀 더 열심을 내도록 하는 측면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에 비해 성령의 오심은 가볍게 치부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에 대한 큰 오해일 뿐입니다.

 

 

본문 내용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오순절 성령강림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당시 마가의 다락에 있던 120명의 신자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셨을 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방언을 하게 된 것이 오순절 성령강림 때 있었던 일들입니다.

 

 

문제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있었던 그러한 일들이 오늘날 신자가 성령을 받을 때마다 나타나야 하고 체험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처럼 지금도 성령을 받을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머리에 임해야 하고, 특히 성령 받을 때 있었던 방언을 할 수 있어야 성령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성령을 받았을 때 본문과 동일한 체험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성령 받은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본문과 같은 체험이 있으면 성령 받은 것이고 없으면 성령 받지 않은 것이라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은 성령이 세상에 오셨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는 것이지만 방언은 신자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지금도 성령 받음의 증거로써 계속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령의 오심과 함께 방언의 증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경에 등장한 방언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방언을 혀 꼬인 이상한 말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타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단지 몇 마디의 단어를 반복하는 것을 가지고 방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 등장한 방언은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라 각 나라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는 방언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방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먼저 성령이 오실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다고 말합니다. 불은 심판의 의미합니다. 그리고 갈라진 것은 나눠진 분리의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오심으로 사람은 성령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로 구분되게 됩니다. 이것은 심판은 확증되게 됩니다. 성령 받지 못한 자에게 심판이 임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건지실 것임을 의미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어떻게 불러 모으시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방언입니다.

 

 

4절을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를 말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많은 무리들은 제자들이 각기 자기들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으로 듣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방언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언을 지금 대할 수가 있습니까? 방언을 한다는 사람들이 방언을 하면 그 말을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모두에게 각기 자기들의 언어로 들리는 방언이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언은 지금 이 시대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바벨탑 사건을 배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날 지구상에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게 된 배경에는 바벨탑 사건이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이 있기 전 인류는 모두 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서로 힘을 모아 탑을 쌓아 흩어짐을 면하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계획은 인간의 힘을 모아 스스로 자신들을 보존해 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었고, 하나님은 언어를 서로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흩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서 이 언어의 벽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방언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각기 다른 나라 사람들의 귀에 자기들의 언어로 들린 것입니다. 언어가 하나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말을 알아들었다는 의미로만 이해하면 안됩니다. 특정 국가의 말을 다른 나라의 사람이 모두 알아듣는 것은, 현대 문명에서도 동시통역이라는 것으로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신 것을 말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셨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은 성령을 받지 않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증거할 때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입니까? 예수님을 증거하는 언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증거의 내용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복음이 지니고 있는 특징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증거되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은 나와 너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복음은 성령 받은 신자에게만 이해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증거됨으로써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자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언의 의미입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말은 성령 받은 사람만이 알고 받아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화가 가능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 때 언어로 인해 혼잡하고 나뉘게 된 세상에 복음 안에서 하나 되는 새로운 관계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미이며 방언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맨 처음 하신 일은 말하게 한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고 병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행한 것이 아니라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받고, 그 말 아래 모이는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신자가 성령을 받았다면 성령이 말하게 하신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성령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말을 하게 됩니다. 즉 자신에게 유리하고, 득이 되고, 자신을 높이고 내세울 수 있는, 한마디로 자기를 위한 말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불리할 수밖에 없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바로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반대를 받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참된 진리이시며 생명이심을 증거하는 것은 세상이 반대한 사람을 좇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동일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를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되며 불리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게 하기 위해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성령으로만 깨닫게 됩니다. 물론 성령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옛사람의 사고방식에 의해 갈등과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그러한 갈등과 혼란까지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의 세계에 끝까지 붙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기뻐하는 하늘나라 백성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참된 방언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말하고 복음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로 기뻐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9 믿음 (믿음 69강) 인내와 믿음 신윤식 2016.07.02 58405
138 믿음 (믿음 65강) 믿음과 긍정적 사고 신윤식 2016.06.04 29696
137 믿음 (믿음 53강) 믿음의 형제 신윤식 2016.03.05 21323
136 믿음 (믿음 76강) 믿음과 지옥 1 신윤식 2016.08.20 20416
135 믿음 (믿음 49강) 믿음과 거룩 신윤식 2016.02.06 17224
134 믿음 (믿음) 1-36강 2 신윤식 2013.10.14 14646
133 믿음 (믿음 82강) 믿음과 평강 신윤식 2016.10.08 9486
132 믿음 (믿음 104강) 믿음과 영광 신윤식 2017.03.11 8094
131 믿음 (믿음91강) 믿음과 하나님의 뜻 신윤식 2016.12.10 6215
130 성령 (성령 1강) 성령이 임하시면 신윤식 2011.01.16 6210
129 구원 (구원 1강) 구원이란 무엇인가 신윤식 2012.04.22 5442
128 성화 (성화 1강) 신자의 거룩 신윤식 2012.01.08 5405
» 성령 (성령 2강) 성령 강림 신윤식 2011.01.23 5317
126 성령 (성령 9강) 성령과 몸의 행실 신윤식 2011.03.13 5311
125 성령 (성령 19강) 생명을 향하여 신윤식 2011.05.29 5300
124 교회 (교회 1강) 교회는 신윤식 2011.07.24 5185
123 성령 (성령 6강) 성령에 대한 불신앙 신윤식 2011.02.20 5179
122 성령 (성령 8강) 성령의 열매 신윤식 2011.03.06 5040
121 성령 (성령 3강) 성령을 받으면 신윤식 2011.01.30 4873
120 성화 (성화12강)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신윤식 2012.04.15 487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