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3.06 18:45

(성령 8강) 성령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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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5:22-23http://onlycross.net/videos/spirit/gal-05222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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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설교>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거의 모든 신자가 성령 받은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맺어야 할 열매로 생각합니다. 즉 성령의 열매로 등장하는 아홉 가지의 항복을 신자가 하나하나 실천하기를 힘씀으로써 나타내어야 할 열매로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가 하나하나 맺을 때 그것이 성화되어 가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신자가 힘써서 맺어야 할 결과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도가 말한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아홉 가지 열매를 각각 분리해 생각하면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고 다음에는 희락이라는 열매를 맺고 그렇게 해서 아홉가지 열매를 모두 완성시키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도가 하나님의 속성 그대로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의 열매를 힘써서 맺으라는 의도로 말했을까요? 물론 사랑을 실천하고자 의도하고 힘을 쓰면 사랑으로 보이는 외적인 흔적이 보일 수 있습니다. 희락이나 화평의 흔적도 보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해하는 희락이고 화평이지만 어쨌든 힘쓰지 않을 때보다 좀 더 나은 모습은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흔적이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사랑이라는 열매의 흔적을 계속 지속시키면서 희락이 가능하고, 사랑과 희락의 흔적을 동시에 계속 지속시키면서 화평이 가능하고, 그런 식으로 여덟 가지의 흔적을 동시에 지속시키면서 마지막 절제의 열매를 맺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아홉 가지의 열매를 온전히 맺을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실력이냐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사도가 말한 아홉 가지의 열매를 하나하나 맺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성령이 오신 이유도,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성령의 일이라면, 성령이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 안에 강한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는 죄부터 깨끗하게 척결을 해야 합니다. 욕망을 척결해야 하고, 미움과 분노와 시기와 음란과 수군수군 대며 남을 비방하는 그 모든 속성부터 척결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열매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이라는 인간의 속성이 강한 세력으로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한 우리에게서는 사랑이든 화평이든 희락이든 그 어떤 열매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신자라고 해서 인간의 악한 속성들이 단 하나라도 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입니다. 결국 성령이 오셔서 하고자 하시는 일은 따로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실천해서 나타내야 할 외적인 결과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스스로 크나큰 혼란과 오류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힘쓰고 애를 써도 맺을 수 없는 열매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과연 성령 받은 신자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의 열매는 단지 듣기 좋은 교훈적인 말로 제시될 뿐이고 신자의 관심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음을 전제했을 때 가능한 말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무엇이든 성령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관이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그의 영을 자기 백성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자기 백성으로 영으로 함께 하심으로써 다스리시고 주관하기 위함입니다. 예수가 누구신가를 알게 하시고 주 예수께 복종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요 16:7,8절의 말씀대로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을 받게 됩니다. 책망을 받음으로써 신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내가 바로 죄인이고 의가 없는 사람이며 심판에 해당됨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실 때는 이런 다스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죄를 드러내실 때 사람들은 의 있는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예수님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의에 대해서는 무능력한 자기 존재성을 알게 되고 비로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왜 구원의 능력이 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고 이것이 성령이 오심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 받은 예수의 사람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정욕과 탐심이 죽고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죄에 대한 형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죄의 형벌을 대신 짊어지신 것이 됩니다. 따라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정욕과 탐심을 자신이 죄의 형벌인 죽임을 받아도 마땅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물로 보게 됨을 뜻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함께 한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이처럼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될 때 가능해지는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의 것이 아닌 예수님의 것을 내 놓을 수 있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부인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께 있는 속성입니다. 사랑이든 희락이든 화평이든 그 모든 것이 다 예수님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는 자기 의를 구축하고, 자기 의를 앞세우며, 자신의 의로 높아짐을 추구하는 사람에게서는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 부인이 있음으로 해서 자기의 것이 아닌 예수님의 것이 드러날 수 있는 인간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항목 하나하나로 확인해야 할 사항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예수님께 있는 속성이라고 해서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사랑과 희락과 화평 등의 항목으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속성이고, 이것은 희락의 속성이라는 식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사랑, 희락, 화평, 등등 모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 자신을 보면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지 하나하나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공공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검표에 기재된 항목 하나하나에 표시를 하는 것처럼 사랑이 나타나는지 희락이 나타나는지 그런 식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열매는 그처럼 하나하나 분리되어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인해서 달라지는 것은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주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행하심이 굳게 서게 됩니다. 그러한 신자는 모든 것을 주님이 행하신 은혜의 결과로 보게 됩니다. 자신이 행한 것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자신의 행함이나 의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영으로 함께 하심으로써 자신을 주관하고 다스리신 은혜의 결과물로 내어 놓으면서 예수님의 일하심을 감사하고 높이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이며 곧 성령의 열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고 높이는 그것이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이 자신에게서 살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열매가 있는가가 아니라 자기 부인이 있는가? 입니다. 예수의 사람에게 자기 부인이 있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고 자기 부인이 있는 신자로 행하는 모든 것이 곧 성령의 열매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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