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2012.01.29 13:11

(성화 3강) 옛 사람 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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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21-24http://onlycross.net/videos/holy/eph-04212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설교>

 

사도는 사람을 옛 사람과 새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성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인격과 성품, 그리고 행동의 변화로 말하기도 합니다. 옛 사람으로 사는 것을 좋지 않은 성품으로 문란하게 사는 생활로 이해를 하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을 그 같은 성품과 생활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가 말하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은 성품이나 행동에 대한 말이 아닙니다.

 

 

만약 옛 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문제가 성품이나 행실에 대한 것이라면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될 것입니다. 하지만 새 사람은 신자에게만 해당됩니다. 즉 신자 아닌 사람은 그 인격과 성품, 그리고 행동이 제아무리 선하고 만인에게 칭찬을 들을 정도라고 해도 새 사람일 수 없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존귀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보면 사도는 옛 사람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것으로 말합니다. 구습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뜻합니다. 이 구습이 썩어져 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따르는 것은 유혹의 욕심으로 인해서 썩어져 가는 헛된 것과 영원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썩어질 헛된 것과 영원한 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육신에 이로운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만을 지향할 뿐입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하와가 사탄의 유혹으로 인해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은 것 역시 유혹의 욕심을 따라 행한 결과였습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같이 된다’는 사탄의 말이 유혹이 되어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결과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결코 죽지 않고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에 마음을 둔 것입니다. 이것이 욕심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규례입니다. 하지만 하와는 이 같은 하나님의 규례보다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말에 더 기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혹의 욕심에 의해서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 대해 듣기 보다는 자신을 이롭게 하고 불편하게 하지 않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죄성인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규례를 벗어나 육신의 유혹을 좇음으로 인해서 죄 가운데 태어난 모든 인간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참된 진리 듣기를 거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즐겁게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육신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의 사람이며 옛 사람에 해당되는 것이며 인간은 이러한 구습을 따라 살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옛 사람의 마지막은 썩어짐 밖에 없습니다. 즉 옛 사람으로 이루거나 얻은 모든 것은 영원하지 못한 헛된 것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지막에 마음 두기를 싫어하고 다만 현재만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돈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누구나 압니다. 죽고 나면 세상의 부귀영화도 다 헛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추구하는 것도 ‘어차피 한번 살고 갈 인생인데 세상의 좋은 것을 더 누려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보다 적게 가진 것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의 삶의 방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옛 사람은 인격이나 성품, 도덕적 행실과는 거리가 먼 말인 것입니다.

 

 

 

옛 사람은 육신만을 바라봅니다. 육신이 잘되는 것만을 성공으로 여깁니다. 영원한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는 마음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생명의 문제는 육신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다만 죽은 후에 천국가면 된다고만 생각합니다.

 

 

이것을 18절에서는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진 것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기에 생명에 대해서는 감각이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은 생명에 대해서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방탕에 방임한 채 살아갑니다. 이것이 옛 사람입니다. 방탕에 방임한다는 것은 생명이 없는 망하는 길로 간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영원한 멸망의 길임을 모른 채 다만 육신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 사람의 상태이기 때문에 옛 사람은 도덕과 윤리를 기준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사람은 무엇일까요? 사도는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3,24절)고 말합니다. 이 내용을 보면 사도가 말하는 새 사람은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며,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곧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사도는 새 사람이 되어라고 하지 않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어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것이 새롭게 변화되고 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성화 개념입니다. 신자가 되었으니 기존의 모습 그대로 있지 말고 변화되고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과천선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사도는 옛 사람은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교체를 의미합니다. 옛 사람이라는 기존의 것은 벗어 버리고 전혀 새로운 것을 입는 것입니다. 즉 변화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움을 뜻하는 것이며, 그것을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 새 사람이라면 새 사람의 마음은 의와 진리로 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의와 진리로 마음이 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이 의와 진리로 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사망으로 끌어가는 죄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죄에 붙들린 자신이 사망으로 향하여 달려가고 있고, 사망의 길에서 자신을 건져 낼 자가 없음을 알았을 때 자연히 우리를 죄에서 구출하시고 사망에서 건져내어 생명에 이르게 할 분으로 오신 구원자에게로 마음이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 사람으로는 죄를 볼 수 없습니다. 죄를 본다고 해도 겨우 윤리와 도덕적 시각에서의 죄만 볼 뿐입니다. 때문에 자기 행동에 별 문제가 없고 신앙생활도 잘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서 죄를 보기보다는 의를 보게 되는 것이 옛 사람이 심령입니다.

 

 

하지만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심령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자기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신을 보게 되면서 죄로 인해 애통하게 되고 자신을 죄에서 구출하시고 생명의 길로 가게 하실 의와 진리에 마음이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사람을 입은 자입니다.

 

 

옛 사람은 육신의 생존에만 관심을 둡니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고 진리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잘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 옛 사람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들에게는 생존에 도움 되는 것이 의고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이것을 죄로 보게 되는 것이 새로운 심령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생존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생명의 문제에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구별된 신자의 삶이며 이러한 삶을 거룩의 길을 가는 성화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게 변화되는 성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으로서 거룩한 신자의 길을 가는 성화인 것입니다.

 

 

변화되고자 하는 것이 곧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에 나오는 현상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 끊임없이 달라지고 변화됨으로써 좀 더 가치 있는 존재로 향상되고자 하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변화되어서 성화를 이룸으로 가치 있는 인간 되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옛 사람의 욕심입니다.

 

 

결국 성화의 삶은 변화가 아니라 죄를 봄으로써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구하는 새로운 심령으로 사는 것입니다. 땅에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찾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썩어질 것과 영원한 것을 생각하며 신자로서 진심으로 추구할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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