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2012.03.18 12:58

(성화 9강) 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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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2:14-16http://onlycross.net/videos/holy/2co-02141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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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설교>

교회마다 표어로 내세우는 구호 중의 하나가 ‘말씀의 생활화’입니다.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있지 말고 생활에서 실천함으로써 말씀의 열매를 맺어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이러한 말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사실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 말씀을 실천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는 것에 대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이 말에 반대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생활화’라는 이런 말로 인해서 말씀의 열매가 도덕적인 삶으로 맺어지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생활화’라는 말 자체가 성경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 생활에 함께함으로 나타나는 열매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말씀의 생활화로 신자의 삶이 지극히 도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바리새인들을 보면 그들이야 말로 ‘말씀의 생활화’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애를 썼던 사람들입니다. 자연히 그들의 삶은 지극히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모습을 갖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시기는커녕 ‘화있을진저’라는 말로 책망하시고 저주 하셨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을 생활화하여 지극히 수준 높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의미의 좋은 신앙이 예수님에게서 부인된 것입니다.

 

 

신자에게서 말씀이 생활화 되어질 때 맺어지는 열매는 자신의 악함을 앎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회개입니다. 자신에 대한 탄식이며 절망과 함께 나를 죄에서 구출하신 주께만 소망을 두게 되는 것이 말씀의 생활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 말씀의 생활화를 위해서 말씀의 실천에 힘을 썼던 바리새인들에게서는 자신에 대한 탄식과 절망으로 인해 나타나야 할 회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도덕성으로 인해서 자기 신앙에 대한 자부심만 커갔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 하나로 천국에서 부인될 거짓 신앙으로 규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는 말이 있고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대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 이웃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감동하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나오게 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냄새나 향기라는 말을 사람들을 이끌어 나오게 하는 힘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치 꽃집을 지나가면 꽃향기가 흘러나와서 사람들의 발을 붙드는 것처럼 신자의 삶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좋은 향기가 되어서 사람들이 감동하게 하여 그리스도를 믿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화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배어 있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향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향기는 아닙니다.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르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향기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한 향기가 아니라 사망에 있는 자와 생명에 있는 자를 드러내는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자신을 이러한 그리스도의 향기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향기를 좋은 인격과 착한 삶을 사는 것으로 연결한다면 사망에 이르는 냄새의 역할로서의 향기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생명에 이르는 향기도 될 수 없습니다. 좋은 인격과 착한 삶이 사망에 처한 자를 생명에 이르게 하는 능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도록 감동적인 삶을 살았습니까? 사도는 한마디로 고난에서 고난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환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할 정도로 힘든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도를 주변 사람들은 조롱하고 그의 사도직까지 의심을 했습니다. 이러한 자신을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복음에 매인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이 그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가게 했고, 고난과 조롱 속에서도 주만 바라보게 한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사도는 이러한 복음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고, 복음이 지향하는 것이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가 말한 그리스도의 향기는 복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가 알았던 복음이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이 복음이 사망에 있는 자와 생명에 있는 자를 구분하여 드러내는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은 듣기 거북한 말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꿈과 욕망을 깨뜨리면서 내가 아니라 주를 바라보게 하는 능력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만 바라보면서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복음으로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받아들인 신자라고 해서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주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을 붙들고 있는 욕망이라는 끈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신자 역시 자신으로 인한 유혹과 시험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은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신앙의 이유로 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탄식하고 절망하면서 예수님의 용서만이 사는 길임을 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내용이 그 속에 살아있는 그가 그리스도의 향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고난이 아니라 평안함을 추구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위치에 있는 것을 성공이라고 여기는 세상의 가치관에 충돌되는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에, 복음 또한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복음을 세상이 환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사도를 세워서 복음이 무엇인가를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세상은 복음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자신을 세상에서 복된 자가 되게 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러한 욕망에 함께 하여 세상의 복과 행복을 이뤄준다는 다른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거짓 사도입니다. 이들에게 참된 복음은 귀에 거슬리는 말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성화의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자는 거룩해져야 할 사람이 아니라 이미 거룩한 신분의 사람입니다. 신자의 거룩은 수준 높은 도덕적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복음이 내가 어떤 자인가를 치는 것으로 인해 자기에 대해 절망하며 그리스도의 의만을 구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를 포기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이 복음이 있는 자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말씀을 생활화하고 실천하기를 힘씀으로 이루어야 할 성화의 삶이 요구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보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심으로 거룩한 자로 여기셨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신분인데 또 다시 거룩한 삶을 이루자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선언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자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는 자로 삽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담고 있는 것이 복음이며 신자는 이 복음으로 그 마음이 가득 채워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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