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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8-10http://onlycross.net/videos/holy/eph-05081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설교>

 

성화를 말할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성화를 도덕적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도덕적 삶의 실천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외적으로 경건과 신앙과 의로움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 때문에 성화의 삶이 곧 도덕적 삶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신앙생활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성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지 도덕을 기준으로 다룰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가 용서되고 거룩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도덕적 삶의 실천과는 무관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입니다.

 

 

롬 8:30절을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입혀진 은총의 사건이기에 성화에 세상의 도덕을 개입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실천을 보여줄 수는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성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한 성화의 삶을 산다고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화는 전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도덕적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미 성화된 사람으로서 성화의 길을 가는 신자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또한 구분되어야 할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성화에 대한 설교를 마치면서 여러분이 이해하셔야 할 성화에 대한 정의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말을 합니다. 이 구절 역시 도덕적 삶과 연결하여 성화의 의미로 많이 이해하는 내용입니다. 빛이라는 말을 세상을 비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 곧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억압받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도와주고, 세상에서 어둠으로 의미되는 교도소나 소년원 같은 곳을 찾아가서 봉사하는 것을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도덕적 시각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서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가 세상의 가치관과 어울려서 함께 멍에를 메고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도덕의 시각에서 이해하게 되면 난처해질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다말이 창녀로 변장을 하고 시아버지인 유다를 속여서 동침 하여 아이를 낳는 내용이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를 기준으로 하면 다말은 용납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말은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됩니다. 즉 다말이 구원 받은 여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말의 구원을 두고 ‘다말이 자신의 행위를 회개했으니 구원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해체하여 인간의 상식에 맞게 재조립하는 억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도덕으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상의 도덕과는 무관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선포하는 것임을 주지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최고의 도덕적 실천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도덕의 의로는 거룩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도덕적 실천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말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부정하는 이단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신자에게서 맺어져야 하는 열매를 도덕의 시각에서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세상 사람과의 본질적 차이를 간과한 잘못된 생각일 뿐입니다.

 

 

도덕은 절대로 신자와 신자 아닌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신자 아닌 사람에게서도 수준 높은 도덕적 삶은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 부름 받고 빛의 자녀라 일컬음 받는 신자가 빛의 자녀처럼 행하는 것을 도덕적 삶의 실천과 연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합니다. 사도는 신자를 전과 이제라는 각기 다른 상태로 구분하여 말합니다. 전의 상태는 어둠입니다. 즉 신자가 그리스도께로 부름 받아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기 전에는 어둠에 속한 어둠의 자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 안에서 빛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존재가 본질적으로 달라졌음을 뜻합니다. 인격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의미가 아니라 빛과 어둠이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달라짐입니다.

 

 

주 안에서 빛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 아래 거하는 것으로 이미 빛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동이나 실천과는 무관하게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이루신 놀라운 은총입니다. 따라서 주 밖에 있는 사람은 그 어떤 도덕적 실천을 보인다고 해도 어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말은 도덕과는 전혀 무관한 다른 행함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처럼 행할 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마치 도덕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릴 수는 있지만 이것은 빛의 열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도덕적 의미와는 다른 주와 연관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착함은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즉 신자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알게 되는 것은 자신의 죄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하심에 대해 눈이 열리게 됩니다. 이러한 신자는 자신을 기준으로 이웃을 비판하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착함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도 타인을 비판하고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누구가가 죽일 놈이라면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죽일 놈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셨음을 안다면 이웃에 대해서도 비판과 판단이 아닌 서로를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착함은 도덕과는 다릅니다. 주 안에 있는 빛의 자녀들에게 오직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맺어지는 열매인 것입니다. 이 열매로 신자는 세상에서 구별된 존재임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나의 의가 아닌 예수님의 의가 기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를 의의 세계로 이끌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님의 의를 높일 뿐이며 따라서 자신의 의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의가 있음에도 그 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어떤 의도 자신에게는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의로운 길로 행하는 신자는 자기 의를 자랑하는 것이 없으며 자기 의를 기준으로 타인과 차별하는 것도 없습니다. 비록 행함과 실천이 다르다고 해도 그것으로 차별하지 않으며 다만 주의 의가 나를 의로운 자가 되게 하셨음을 감사하고 기뻐할 뿐입니다.

 

 

진실함은 거짓이 없는 참된 것을 의미합니다.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것은 무엇이고, 그 진실함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실된 인간의 모습은 사도처럼 ‘나는 죄인의 괴수입니다’라는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이기에 자신의 죄인 됨을 아는 것이야 말로 진실 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함 역시 주 안에 있는 신자에게서만 맺어질 수 있는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이러한 진실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함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은 죄인이라는 자기 본질을 아는 자로 이웃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이웃은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고 그 은혜로 감사하면서 함께 거룩의 길을 가야 할 형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형제 사랑인 것입니다.

 

 

신자는 거룩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이끄는 길이 거룩의 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두는 내 기쁨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절)는 말씀처럼 주를 기쁘게 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이기 때문에 항상 무엇이 주께 기쁨이 되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기쁨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참여된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화된 신자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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