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6 17:50

(2강) 애굽의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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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8-14http://onlycross.net/videos/exo/exo-0108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설교>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애굽에서 나가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애굽에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하나님이 모세를 보낸다 해도 나가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게 애굽에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을까요?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한 후 4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애굽은 이미 굳건한 삶의 터전으로 굳어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비록 애굽 땅에 몸을 두고 있지만 그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굽에서의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의 이스라엘에게 모세가 와서 ‘하나님이 약속의 땅으로 가라 하셨다. 나를 따라 애굽에서 나가자’고 외친다면 과연 순순히 따라 나올까요? 현재의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한 400년이 넘게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애굽이 자신들이 살만한 곳이 아님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그 작업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생육하고 번성하여 매우 강한 민족으로 온 땅에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한 민족으로 번성하는 것이야 말로 누구나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번성은 애굽을 자극하게 되고 이스라엘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당시 애굽은 요셉을 알지 못한 새 왕이 애굽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요셉이란 인물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애굽에 끼친 요셉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백 년 동안 애굽 땅에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게 된 내막을 왕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굽 왕이 수백 년 전에 요셉이란 인물에 의해 애굽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안다 해도 요셉에 대해 고마운 마음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무엇보다 현재의 애굽이 요셉과 상관없이 자신의 통치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요셉에 대한 고마움이 없다는 뜻이 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경계하며 억압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10절에서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라고 말합니다.

 

 

애굽 왕이 염려한 것은 이스라엘이 더 번성해지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애굽의 대적과 연합하여 싸우고 애굽 땅에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노역에 동원하여 부려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가는 것을 애굽의 경제력 손실로 여긴 것입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강한 민족으로 번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학대를 합니다. 11절에서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고 말한 것처럼 비돔과 라암셋 성 건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면 번성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학대를 받을수록 번성하여 퍼져가게 합니다. 그 때문에 애굽 사람은 더 근심하고 일을 엄하게 시키며 어려운 노동으로 생활을 괴롭게 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이 번성하게 되는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요셉을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번성도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시각으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반응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 세상은 복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아가기보다는 예수님의 존재가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에만 마음을 두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들의 종교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 붙잡아 제거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을 때 중요한 것은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의 현재적 위치를 무너뜨리며 다가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만 마음을 두게 합니다. 이로 인해서 갈등과 다툼이 발생하고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들로부터 복음이 배척받고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번성하고 강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는 것이 세상의 참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번성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노역으로 학대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히브리 산파를 불러서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울 때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리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그 또한 애굽 왕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답은 역시 배후에 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의 번성이 학대로 되돌아오는 것을 두고 보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이 자신들이 머물 곳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학대가 있기 전까지 애굽은 이스라엘이 살만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애굽에 마음 두지 않고 떠나야 할 것으로 바라보게 하기 위해 애굽의 학대를 두고 보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굽 왕이 아닌 우리가 요셉을 알지 못한 사람, 다시 말해서 요셉에게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들로 나타날까요?

 

 

애굽 왕과 동일하게 우리의 삶에 발생하는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잊을 것입니다. 유불리만 따지면서 유리한 것은 받아들이고 불리한 것은 배척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하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천국을 소망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세상에 더 집착하고 살만한 세상이 되기를 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결국 세상에서 나올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실까요? 세상에서 나올 생각이 없고 오히려 더 깊이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에 호응하셔서 우리가 원하는 환경으로 만들어 주실까요? 아니면 세상이 어둠임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머물 곳이 아님을 알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로 만들어 가실까요?

 

 

이스라엘의 학대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둠의 세력임을 생각하게 하고 애굽과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신자의 시선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 우리에게 알게 하고자 하시는 무엇인가?’에 궁금함과 의문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싫어져야 천국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죄만 있는 세상은 살 곳이 못 된다는 절실함이 있어야 죄 없는 의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사망에 건지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가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무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좋은데 천국을 가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죄와 불의를 보게 하시고 그 죄와 불의가 자신에게 있음을 절감하게 하시면서 그리스도의 의의 나라를 소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서 나그네일 뿐입니다. 믿음으로 살만한 곳도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을 무시하고 복음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을 못 박은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떠나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영원히 머물게 되는 그 날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이 천국을 사는 신자입니다. 우리를 세상에서 끌어내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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