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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6-12http://onlycross.net/videos/exo/exo-0306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설교>

모세는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40년을 지내다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경험한 일은 신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를 태우지 않는 불꽃으로 나타나신 것이나 모세를 부르셔서 사명을 주신 것도 우리에게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모세와 같은 경험을 하고 싶어 합니다.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비한 사건이나 모세처럼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불러 주시면 믿음에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만나 주시고 이름을 부르시며 사명을 주시는 것이 생각처럼 환상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 오지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마 갈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기에 바쁠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비한 체험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음성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호가인하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삼고자 하는 욕망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셔서 만나시고 그 이름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는 것은 모세의 인생을 하나님이 주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모세 인생을 모세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인생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에게 ‘애굽으로 갈래 말래’라고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말로 애굽에 갈 수 없음을 시사해도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시며 모세를 주도해 가십니다. 이것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라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비록 모세가 본 떨기나무의 불꽃이 없다 해도 모세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는 것이고, 모세를 부르시고 애굽으로 보내시는 것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 인생의 주도권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됨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경험하는 말씀의 세계이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앎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비록 혈연으로는 한 가족이지만 동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추구하는 것도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것은 그들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동일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뜻에 의해서 하나님이 의도한 길로 이끌려 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개인을 위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인을 위한 하나님’은 인간의 종교성에 의해 조작된 우상일 뿐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성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삭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삭은 야곱보다 에서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이삭의 생각대로 된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에서에게로 갔을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도 그 생각대로 되었다면 단지 세상에서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을 주도하시면서 하늘의 복을 알게 하시고 욕망으로 살았던 인생을 험악한 세월로 바라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인생을 주도하시고 다스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처럼 모세의 인생도 하나님에 의해 주도될 것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 인생의 참된 실상입니다. 내 의도가 아닌 하나님의 의도대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인생이 주도되는 것에 불만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생을 주도한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인생을 주도하고 관리하면서 내 의도대로 산다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자리에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인생에 개입하시고 주도하고 다스리시는 것이 큰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신 이유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모세는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1절)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만과 함께 부당함을 토로합니다. 모세가 처한 현재의 형편으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모세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12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모세에게도 반드시 함께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일은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모세가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모세가 힘이 있든 없든 모세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께 붙들린 자가 되어서 이스라엘에게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대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힘을 주시고 도와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하지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을 수행하는 존재로 전락됩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하나님이 뜻하신 일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신다는 것도 우리를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뜻대로 되어 지기를 원하는 것은 포기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백성을 인도하여 낸 후에 이스라엘이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모세 스스로 이스라엘에게로 왔다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인도 받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출 19:4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독수리 날개로 업었다는 것은 도무지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붙들렸기에 하나님께로 인도될 수 있었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에 붙들렸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신 증거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을 섬긴 것이라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증거는 당연히 우리가 하나님께로 인도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세상에서의 복과 성공을 증거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증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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