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1 15:29

(10강) 하나님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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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7-10http://onlycross.net/videos/exo/exo-03071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7.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설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 중에서 은혜를 아는 사람을 뽑아서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한 자를 부르셔서 은혜를 알도록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그가 곧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알지 못한 자를 부르셔서 은혜를 알게 하시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입니다. 우리의 생각에 자리하고 있는 그 은혜 말고 성경이 증거하고 가르치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7,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고 말씀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당시 이스라엘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정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말합니다(출 2:23,24)

 

 

언약을 기억하셨다는 것은 언약을 잊고 계셨다가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비로소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도우실 생각을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이 이스라엘이나 모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방향으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향이고 목적인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내려오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건져 내고 아름답고 광대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땅은 이미 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스, 휘위, 여부스 족속이 거주한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족속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할 힘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땅으로 이스라엘을 데려가셔서 기업으로 주시는 것은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자신들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함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됨을 위해서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들을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배우는 방향으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고된 노동의 고통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부르짖었을까요? ‘조상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사 우리를 애굽 땅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었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려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이 넘도록 생활하면서 계속 고된 노동으로 고통을 겪은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 그 전까지 이스라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매우 강한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이유가 없었고 언약 또한 당연히 잊은 채 살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고통 때문에 잊었던 언약을 생각하고 언약의 성취를 위해 부르짖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전에 누렸던 평안을 위해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어려움에서 하나님을 찾는 오늘의 기독교인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언약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기 위해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시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생각을 따라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인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관심 또한 ‘부르짖으면 주신다’가 아니라 ‘무엇을 주시느냐’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고통이 없었으면 부르짖지 않았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와 동일합니다. 고통 때문에 겨우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긴 하지만 관심은 하나님의 언약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기 위해서 내려오시고 함께 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만 애굽에서의 삶이 편해지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찾았을 뿐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보내시고 그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 홀로 하신 일일 뿐입니다.

 

 

모세조차도 애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 가게 된 것 뿐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의 거민을 몰아내고 그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 모든 일에 인간이 기여한 바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와 열매를 거두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입니다’라는 고백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내려오신 것처럼 우리에게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습니다. 우리 역시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나의 신상에 관한 문제로 부르짖었을 뿐입니다. 세상에서 건져 달라고 부르짖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은 우리가 부르짖은 내용과는 다르게 우리를 세상에서 건져 내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희망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건지시고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구원자를 원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세상에서 고통 없이 편하게 사는 것을 소원했을 뿐입니다. 이런 우리를 세상에 방치하지 않으시고 건져내어 생명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홀로 하셨습니다’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홀로 이루신 그 일을 높이고 감사하는 것이 믿음에 붙들린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고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죽음을 안고 있고 생명나무는 말 그대로 생명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생명보다는 죽음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죽음을 안고 있는 선악과가 보기에 좋고 탐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건져지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더 많이 소유하고 누리고 싶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셔서 세상에서 나오기를 싫어하는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게 하셨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9-10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일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나님이 홀로 행하시고 이루시는 것이고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됩니다. 본질을 보면 심판이 당연한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셔서 언약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목적이며 그 뜻대로 동일하게 우리를 간섭하시고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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