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8 16:10

(11강) 스스로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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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13-14http://onlycross.net/videos/exo/exo-0313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설교>

모세는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사명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기 위해서는 애굽의 바로를 상대하여 이겨야 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가 처한 환경과 처지는 바로를 상대하기는 너무 미약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는 말로 거부 의사를 밝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말씀합니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뜻은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지만 너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룬다’입니다.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안다면 자신이 처한 처지나 힘을 생각할 필요 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이루심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조차 인간에게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간섭하시면서 믿음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타인에게서 믿음을 인정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애당초 나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믿음 좋다는’말을 들음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생각했던 것도 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간다 해도 그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라는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13절)라고 물은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셨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이스라엘 자손이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사실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너희의 조상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 한마디로 모세를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조상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혹시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물으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말했는데 자신을 보낸 하나님의 이름도 모른다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14절)고 답하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세의 물음에 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모세에게 답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기대하는 답을 거부하시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말씀하심으로 답을 주신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에 담긴 의미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신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이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과학을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신다는 것을 간과한 사람들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를 발굴하여 성경이 말하는 심판의 사건이 사실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간의 착각이며 오류일 뿐입니다.

 

 

모세가 잘못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모세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인정을 받든 받지 않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잘못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신다고 말은 하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일하시고 이루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평가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의 의미는 ‘나는 나다’입니다. ‘나는 내 생각으로 내 뜻에 따라 일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절대적인 존재다’라는 뜻입니다.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은 그 어떤 무엇도 의존하지 않고 제약도 받지 않으며 스스로 존재하면서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시는 분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에서나 하나님을 증명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을 의존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실 뿐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야 모세가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붇는 모세의 의도와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답답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세상이 알도록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하고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받아들이는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정당성과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이 인정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나타내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독교인으로부터도 인정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면서 믿음의 길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의존하지 않으시고 홀로 모든 일을 성취하실 뿐입니다.

 

 

요 14장에 보면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빌립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고 말씀합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아버지를 보여주면 그로 인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더 신뢰하고 따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정받기 위해 하나님을 보여줄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자기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표적을 보여주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요구에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루실 십자가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참되고 유일한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길로 가지 않으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 또한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인정하셔서 백성으로 택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의 믿음의 세계는 인정받아야 하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에 감사하고 기뻐하게 되는 길로 가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은 우리를 주관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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