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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4:18-23http://onlycross.net/videos/exo/exo-04182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8.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22.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설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에게 이해되거나 납득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모세를 보내시는 과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세에게 큰 능력을 주셔서 애굽으로 보내시면 모든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께 원하는 일의 방식입니다. 능력만 주시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능력자로 만들어서 애굽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모세에게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모세는 애굽으로 가기만 하면 되고 일은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애굽에 가서 할 일은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음을 증거 하는 것이고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모세의 실력이나 자질은 전혀 요구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일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에 인간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실패의 길로 가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 일을 하는 수준에 머물 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으니까 애굽으로 돌아가라 하시고,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예상되는 상황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함께 하겠다고 하셨고 기적을 행하여 표징을 보여주셨으니 모세가 하나님을 믿고 애굽으로 가서 바로와 담판을 짓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데리고 애굽에서 나오게 되는 상황이 상상되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모세가 애굽으로 간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상황은 예상되지 않겠지만 만약 성경을 알지 못한다면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상황도 상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의 일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면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이적을 다 행하라고 하시면서도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백성을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이 순탄하게 잘 되려면 모세가 하나님이 준 이적을 행했을 때 바로로 하여금 놀라고 굴복하게 만들어서 이스라엘을 내보내게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본래는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지 않아서 모세가 행한 기적을 보면 이스라엘을 내 보냈을 것인데 하나님이 완악한 마음이 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게 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당연히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완악하지 않은 바로의 마음을 하나님이 완악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은 죄를 조성하시는 분이시고 죄의 책임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은 인간의 본래 마음이 어떠한지 부터 생각하며 이해해야 합니다.

 

 

완악하다는 것은 자기 고집, 자기의 생각이 아주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은 본래부터 완악한 존재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인간의 공로와 의와 행함과는 무관함을 말해주는 십자가와 하나님의 언약 앞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공로와 의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완악하지 않은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는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완악한 본성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보다는 날 위한 삶에 관심을 두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얼마나 완악한 존재인가를 실감하지 못합니다. 교회 생활을 성실히 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완악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드시기도 합니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이 완악하게 하셨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완악한 마음을 드러내게 하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다만 애굽의 이익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있으려고 하는 그것이 인간의 완악으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바로의 완악은 바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동일한 본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고 오늘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된 신자라면 ‘나는 구원될 수 없는 마음이 완악한 자 일 뿐입니다.’라는 고백이 있게 되는 것이고. 이 고백이 믿음에 의한 것이라면 신자는 모든 사람 앞에서 자랑할 자기 공로와 의가 없는 자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방인 바로는 얼마든지 하나님에 대해 완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섬겨온 민족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완악한 마음이 되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바로와 다르지 않은 완악한 존재라는 사실이 광야 생활을 통해서 낱낱이 드러납니다. 이 또한 이스라엘을 완악하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도, 애굽도 심판의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토록 인간의 완악함을 드러내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완악함이 드러날수록 인간은 구원될 가치 없는 존재임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될 가치 없는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증거 되며, 택한 백성으로 하여금 그 은혜를 알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만 높이고 감사하고 찬송하게 하심으로 영광 받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이러한 뜻을 세우고 계시기 때문에 무작정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의 완악함을 보게 하시고 광야 생활을 통해서 바로와 동일한 완악함이 자신들에게서도 드러남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이키기 위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일에는 악이 필요합니다. 악이 없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악인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절에 보면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손에 잡은 지팡이는 하나님에 의해서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된 그 지팡이입니다. 지팡이가 뱀이 된 것은 모세가 보냄 받은 애굽은 뱀의 사고방식으로 존재하는 세상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애굽이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것이 아무리 좋고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라 해도 결국에는 심판과 함께 사라질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지팡이가 나타내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 곧 구원인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가는 모세의 사명입니다.

 

 

23절을 보면 바로의 완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장자를 죽이시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장자의 심판에서 이스라엘도 예외가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으셨기에(22절) 어린양의 피로 그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긍휼히 여길 자란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는 하나님의 택하심 아래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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