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5 16:41

(97강) 안식

조회 수 50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성경본문 출 23:10-13

출 23:10-13http://onlycross.net/videos/exo/exo-231013.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12.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13.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설교>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면 기적과 같은 신비한 경험을 통해 만나게 될 것이고, 신비한 경험은 자신의 신앙을 더 강하고 확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죽음의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자기의 존재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죄의 존재, 죽음의 존재로 보지 않고 행함의 여부에 따라 복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현재의 신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죄 앞에 세우기 위해서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6:5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존재 현실이 죄로 인한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선지자의 고백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있을 수 없는 존재임을 배우는 것이고 그것을 율법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에서 다른 것을 기대하고 원합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참된 현실에 직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죄에서는 멀어지고 의로운 자로 드러나기 위한 의도로 율법을 상대합니다. 율법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이라는 것을 하면 타인의 눈에는 의롭고 신앙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여전히 멸망의 존재일 뿐입니다. 인간만 표면적인 선에 갇혀서 자기 죄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뿐입니다.

 

 

본문도 다르지 않습니다.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10,11)는 말씀에서 의로운 인간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여섯 해 동안 농사짓던 땅을 가난한 자와 들짐승을 위해 일곱째 해, 한 해 동안 묵히는 것은 타인의 눈에는 의로운 행위로 보일 것입니다. 한 해의 소출을 가난한 사람과 들짐승을 위해 포기하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을 묵히라는 것이 가난한 사람이나 들짐승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입니다. 땅을 묵히라고 한 것은 가난한 사람이 대신 농사를 지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대신 농사를 짓는다면 그것은 땅을 묵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땅을 묵히면 육년 째에 거두었던 곡식 줄기에서 자연히 자라난 것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자라난 곡식의 양이 충분치 않기 때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육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정 분량을 바치게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땅을 묵히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주셨을 때 칠일 째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육일 째에 갑절을 주셨음에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칠일 째에도 들에 나갔습니다. 하루치의 양식도 포기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한 해의 농사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육년 째에 소출을 갑절로 거두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 상항에서 한 해의 농사를 포기한다면 생존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땅을 묵히라고 명령하는 것은 땅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땅을 묵히게 한다거나 농사를 짓도록 허락을 하는 것은 주인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땅을 받아 소작을 짓는 입장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농사짓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먹을 것이 없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땅을 묵히라는 명령이 의미하는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하나님의 허락으로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땅을 묵히라는 말씀으로 잊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26:35절에 보면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묵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여러 민족 중에 흩어 버리시고 그들의 땅을 황무하게 하여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심으로 땅이 안식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땅을 황폐하게 하시고 땅을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땅을 묵히라는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땅을 묵히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유지되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담아 두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수고하고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노동할 수 있게 하신 것까지도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수고는 완전히 배제되는 은혜입니다.

 

 

12절에 보면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일 법 역시 단순히 인간이 쉬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안식일 법이 없다면 인간은 계속 일하려고 할 것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그 날의 양식을 구할 수 없는 처지에서는 일하는 것이 곧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쉬라는 명령을 주심으로 인간의 의도와는 달리 강제로 쉬게 하시는 것은, 육일 동안 일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안식일에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쉬는 것이 안식일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고 수고한 육일 동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실상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누리게 된 은혜였음을 배우는 것이 안식일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을 빌미 삼아 복을 구합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주일 성수를 내세워서 복을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수고와 열심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은혜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자기를 위한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존재하는 세상의 속성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에 해당되는 세상의 실상이라는 것이 율법이 있음으로 폭로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쉰다고 해서 다른 날에 보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일 동안의 모든 소득이 하나님에 의한 은혜로 생각해 보십시오. 은혜가 아니면 그 소득조차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쉬었을 때 소득이 없는 것을 두고 손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안식일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의 수고로 존재한다는 은혜의 방식 안에서 안식을 누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땅을 묵히라고 하시든 쉬라고 하시든 사람은 자신의 손해를 유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인간을 말씀 앞에 세우시고 네가 누구인가?’를 물으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예수님이 다 이루신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완성이 되시기에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일하심이 우리에게 의가 되고 승급이 되는 새롭고 신비한 세상입니다. 이 세상만이 참된 안식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따로 지켜야 할 안식일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안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용서가 되고 의로움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최고의 복된 현실입니다. 우리를 예수 안에 있게 하신 은혜가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는 것이 안식에 참여되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성경본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설교 원고는 없습니다 신윤식 2022.01.01 949
공지 암, 옵, 욘 성경강해 방으로 옮겼습니다. 신윤식 2011.02.28 7274
공지 이전 홈페이지 수요일설교 들어가기 은석교회 2010.01.01 40102
296 아 2:15-17 (9강) 여우를 잡으라 신윤식 2021.05.29 861
295 (9강) 모세를 보낸 증거 신윤식 2017.01.14 1983
294 잠 3:1-10 (9강) 그리하면 신윤식 2021.12.18 659
293 잠 23:1-8 (99강) 허무한 것 신윤식 2023.12.29 218
292 출 23:18-19 (99강) 생명과 생존 신윤식 2019.01.19 585
291 출 23:14-17 (98강) 세 절기 신윤식 2019.01.12 590
290 잠 22:22-29 (98강) 사람과 사람 신윤식 2023.12.22 279
289 잠 22:17-21 (97강) 지식에 마음을 신윤식 2023.12.13 232
» 출 23:10-13 (97강) 안식 신윤식 2019.01.05 503
287 잠 22:13-16 (96강) 여호와의 노 신윤식 2023.12.08 254
286 출 23:6-9 (96강) 나그네의 사정 신윤식 2018.12.29 581
285 출 23:1-5 (95강) 율법과 인간 신윤식 2018.12.15 647
284 잠 22:7-12 (95강) 여호와의 눈 신윤식 2023.11.30 259
283 출 22:25-31 (94강) 자비의 법 신윤식 2018.12.08 578
282 잠 22:1-6 (94강) 경외함의 보상 신윤식 2023.11.23 244
281 잠 21:27-31 (93강) 이김은 여호와께 신윤식 2023.11.16 234
280 출 22:18-20 (93강) 살려두지 말라 신윤식 2018.12.01 79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