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강) 세 절기

by 신윤식 posted Jan 12,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성경본문 출 23:14-17

출 23:14-17http://onlycross.net/videos/exo/exo-23141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4.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설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이 개입되어 발생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자기의 뜻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이스라엘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에 존재할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문제는 인간은 자기 뜻의 성취를 위해 신을 찾는 존재이고 이스라엘 역시 동일한 인간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의 뜻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지만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뜻을 포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어떤 인간도 스스로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다른 민족과 다를 바 없이 자기의 뜻을 위해서 살아갈 이스라엘을 굳이 택하여 세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마주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 실패한 그들의 인간성과 동일한 우리 자신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수고와 희생으로 이루신 일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그들이 참된 이스라엘이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임을 세상에 나타내시고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이야기도 그들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들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에 주지해야 합니다. 이것을 간과한다면 구약 성경의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멀어질 것입니다.

 

 

물론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기독교인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성경을 자신의 이야기로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에게서 자신의 심각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소경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가 헌금을 강조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심각한 현실, 즉 저주에 갇힌 실상에는 아예 무관심이고 인간으로 조직된 교회만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결국 헌금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멸망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과 무관한 이스라엘의 실패로만 보기 때문에 자각되는 바가 전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절기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유월절은 무시하면서도 맥추절과 수장절을 근거로 해서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을 지키지만 성경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세우신 세 절기는 대개의 기독교가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세 절기의 시작은 유월절입니다. 15절에 보면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무교병의 절기는 유월절을 말합니다. 유월절 기간 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이라는 딱딱한 떡을 먹기 때문에 무교절이라고도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것은 하나님의 개입과 일하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실상은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게 된 과정에는 어리양의 피가 있습니다. 장자 재앙에서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사람들이 죽음을 통과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애굽과 동일하게 죽음의 존재인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희생의 피로 용서함을 받아 죽음을 통과하여 애굽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의해 존재함을 증거 하는 것이 유월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절기를 곡식을 수확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득에 감사하라는 뜻의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서 언급된 빈 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내용을 근거로 감사헌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기준으로 헌금의 액수로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맥추절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말씀드린 것처럼 애굽에서의 어린양의 피, 유월절입니다. 어린양의 피가 아니었다면 애굽과 동일하게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애굽에서 나오지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애굽에서 나왔다 할지라도 홍해를 건널 수도, 광야를 통과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것도,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한 광야를 통과한 것도 어린양의 피로 인한 용서의 능력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 그들의 시작인 어린양의 피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땅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고, 수고할 수도, 열매를 거둘 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취지인 것입니다.

 

 

때문에 수고하여 첫 열매를 거두었다 해도 거기에 이스라엘의 수고는 개입될 수 없고 다만 어린양의 피의 은혜만 자리할 뿐입니다. 자기의 수고를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따라서 수고하여 거둔 열매 또한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을 맥추절에서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맥추절 다음에 이어지는 수장절은 마침, 즉 종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절 뒤에 나오는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는 내용처럼 한 해의 마지막에 거둔 것을 저장하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수고와 희생에 의해서 하늘나라에 저장되는 존재임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수장절 역시 곡식을 수확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먹고 살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월절로 시작된 절기의 의미를 모른 채 단순히 하나님의 주셨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게 되면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는 것의 많고 적음을 따지게 될 것입니다. 많이 받은 자와 적게 받은 자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기의 시작인 유월절의 의미를 무시하고 놓친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살게 된 것은 그들의 수고와는 무관한 어린양의 희생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희생을 기억한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한다 해도 자기들의 수고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어린양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주신 덕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희생으로 죽음에서 건짐 받고 성령이 오심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힘으로 죽음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와 수고로 거룩한 백성의 신분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을 책임지면서, 자신의 수고로 원하는 것을 얻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신자는 다만 예수님의 희생 때문에 산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고 주의 은혜를 높이고 증거 할 뿐입니다. 이것이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애당초 인간에게는 없는 하나님이 은총의 선물로 주신 믿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사는 것이 세 절기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만 하나님이 받으신다면 우리가 무엇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가치 없는 것으로 규정될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실상입니다. 가졌다 하나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상을 모르기에 손에 있는 것을 가진 것으로 규정하고 많이 가지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빈손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이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는 것이 절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