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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3:27-33

출 23:27-33http://onlycross.net/videos/exo/exo-232733.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7.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28.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29.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31.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32.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33.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설교>

사람에게 현실은 현재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상태입니다. 눈에 보이고 몸으로 경험하고 부딪히는 일들을 현실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고 몸으로 경험 되지 않는 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이상이고 몽상이며 허상일 뿐이지 실제가 아닌 것으로 간주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보이는 것만 현실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풍토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상의 풍토에서 신자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신자는 현실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믿습니다. 그러면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설령 어떤 현실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면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보여줄 능력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이유로 모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현실이 힘들 때 흔히 하는 말이 현실에 수긍하자는 것입니다. 힘든 현실에서 벗어 나거나 바꿀 수 없을 때 차라리 현실에 수긍하면 심적으로 편안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힘든 현실로 인해 괴로워하고 신세 한탄을 하는 것보다는내 운명이려니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은 편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과연 사람이 모든 현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현실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이자고 말하는 것과, 세상이 현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에 의미의 차이가 있을까요? 주어진 현실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말하든 운명으로 말하든 현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마음이 평안해지는 길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의미로든 인간이 모든 현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일 힘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 모든 말은 그저 듣기 좋은 말이라는 결론을 내릴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을 현실로 자각하며 살아가는 상태에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자의 시각인가를 바르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27,28절을 보면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위엄과 왕벌을 앞에 보내어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쫓아내겠다고 합니다. 위엄과 왕벌은 가나안 땅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앞에 천사를 보내어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물리치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이 이미 쫓겨난 상태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갔어야 합니다. 위엄과 왕벌을 이스라엘 앞에 보내어 가나안의 족속을 쫓아내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이 거주하는 상태에서 들어갔고 그들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슨 이유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것이 곧 참된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참된 현실로 바라보고 소망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이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의 족속들이 거주하고 있다 해도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쫓겨난 자들일 뿐입니다. 그들이 강하다 해도 쫓겨나고 없는 존재라는 것이 말씀의 현실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말씀이라는 보이지 않는 현실을 통해서 보이는 현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가나안의 현실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보이는 것만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 현실로 인정하는 자들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땅을 미리 정탐했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정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모두 열두 명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13:1,2).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위엄과 왕벌을 앞서 보내어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겠다고 하셨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가나안땅의 족속이라는 장애물을 처리해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면서 자기 백성을 힘들게 하는 장애물을 처리해 주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기대하고 원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위엄과 왕벌을 보내어 가나안의 족속을 쫓아내겠다고 하신 것이 이스라엘을 힘들게 할 장애물을 미리 처리해 주시겠다는 의미로 이해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정탐꾼을 보내라는 말씀으로 부인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존재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정탐꾼에게 가나안 땅의 상태에 대해 듣게 된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정탐꾼들에게 듣게 된 가나안의 상태가 그들의 현실로 다가왔기에 절망한 것입니다. 가나안 거민은 강하고 신장이 장대하며 그들에 비해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현실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14:8)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로 본 것입니다.

 

 

결국 정탐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삶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되고 몸으로 경험되는 현실을 이루어주는 하나님을 생각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사탄으로 인해 형성된 모든 인간의 자아이며, 그러한 자아가 확인되면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보내신 위엄과 왕벌로 인해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야 할 존재일 뿐이라는 것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14:9절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라는 말을 했을 때 백성들은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참된 현실을 증거 한 자에 대한 반응이며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정탐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난 것은 이스라엘 또한 이방민족과 동일하게 눈에 보이는 자기 현실을 위해 신을 찾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도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야 할 인간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참된 본질입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 이유는 그들의 존재 근거가 그들 자신이 아닌 어린양의 희생에 있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희생으로 증거 된 하나님의 용서가 자신의 존재 근거이며 참된 현실인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들이 알았던 복과는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신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용서를 속에 품고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부르신 거룩한 자로 하여금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시고 용서의 놀라운 세계가 드러나도록 그 인생을 간섭하십니다. 이것이 신자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현실에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완성된 다른 현실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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