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3 15:40

(104강) 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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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5:1-9

출 25:1-9http://onlycross.net/videos/exo/exo-25010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5.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설교>

모세를 산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계명이 기록된 돌판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막과 성소를 지으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런데 성막과 성소를 지으라는 것은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과 충돌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막, 성소도 보이는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문자로만 해석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계명을 주시는 이유,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는 이유,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계명과 성막이 가지는 의미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충돌되는 말씀이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방 민족에게도 신이 존재하고 신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계명과 신전, 제사장도 있습니다. 계명과 성막이 이스라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 민족의 신과 계명, 제사장 등등은 모두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시고 지시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방 민족이 신전을 만든다면 그 용도는 신을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전에서 자기들이 고안한 방식으로 제사하며 신에게 복을 비는 것이 신전의 용도입니다. 따라서 신전은 신이 거주하는 거룩하고 신성한 곳으로 분류될 것이고, 누구든 함부로 신전을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신전의 거룩을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신전을 침범하면 신이 노한다는 자체적인 규례를 세우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신을 섬기는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지어진 성막도 이방인의 신전과 비슷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성막은 일반 백성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고, 특히 성막 안에 위치한 성소라는 곳은 제사장이라 해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도 성막과 성막 후에 존재하게 되는 성전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으로 구별하여 신성시하였습니다. 그러한 부분들이 이방 민족이 신전을 만들고 신에게 제사하면서 복을 구하고 신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으로 믿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이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막을 지으라고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인간의 무엇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며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8,9절을 보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성막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거하시고 함께 하시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방식으로 주어진 것이 성막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성막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만 여길 뿐이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거하시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은 생각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왜 성막이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거하시는가?’에 대한 의문도 관심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지금의 기독교인들이왜 십자가의 피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오셨는가?’에 대해서는 관심 없이 예수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만 여호와께 나아오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은 여호와께 나아가는 것을 거절당한 것입니다(24:1-2). 그것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 또한 이방 민족과 동일한 심판의 존재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자신들의 그러한 실상을 알았다면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거하시고 함께 하시기 위해 지으라고 하시는 성막이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막은 모든 것을 내어서라도 지어야 하는 존귀한 전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고 이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성막을 위한 예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가져오라 하신 예물은 금, , , 청색, 자색, 홍색 실, 수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 향품, 보석 등등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으로는 부담되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내는 것이 인간의 마음으로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는 내 손에 있는 것을 나를 위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내가 수고하여 나를 위해 벌어들인 내 소득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사용할 내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성막을 짓는 일에 기쁜 마음으로 내게 된다면 성막의 존재 가치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겼을 때 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기 위한 장치고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함께 하신다는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성막을 지으라는 지시는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성막을 짓되 우리가 알아서 지으면 안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도 이방 민족과 동일하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심판의 존재, 즉 죽음의 존재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며 어떤 방법과 노력을 동원한다 해도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거할 방식으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는 것은 성막이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현실로 주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막이라는 새로운 현실이 금, , 보석 등을 손에 쥐고 사는 현실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음을 알게 된다면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막이라는 새로운 현실이 자신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생명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때 애굽 사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셔서 은금 패물을 가지고 나오게 하십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낼 예물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가지고 나온 것들이기에 자기 것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대상 29:15-16절에 보면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희망이 없는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바라봅니다. 그러한 자신들에게 성전이 곧 희망인 것을 안 것이고 주로 말미암은 모든 것이 세상에서의 편안한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예비 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막에는 제물의 희생으로 인한 피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현실이 됩니다. 피가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거하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있는 십자가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죽음의 존재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거하시고 함께 하시는 방식이 십자가인 것이고 십자가가 새로운 현실로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아닌 피로 인한 용서가 생명이 되는 새로운 현실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알고 죽음을 자기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오심과 피 흘리심은 죄 용서와 함께 거룩한 자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된 새로운 현실을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가 감사함이 되며 자신의 손에 있는 모든 것보다 우월한 존귀함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로 인한 감사와 기쁨이 있는 그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인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로 인해 즐거운 마음이 되고 예수의 피를 증거 하는 성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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