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1 14:55

(115강) 판결 흉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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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8:29-30

출 28:29-30http://onlycross.net/videos/exo/exo-282930.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9.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30.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

 

 

<설교>

성막은 사람의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세워집니다. 사람을 위한 성막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성막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막을 자신들을 위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성막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시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복을 주기 위한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절대적 의미를 두고 삽니다. 때문에 자신에게 아쉬운 것과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자신이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도록 도움 되는 것에 관심을 둡니다. 성막에 관심을 둔다면 그 이유 역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관심 두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막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 성막이 왜 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판결 흉패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판결 흉패가 사람을 위한 것일 때 관심을 두는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관심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도움 되고 이익이 되는 것에만 관심 두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절대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님이든 성막이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해 주는 것이면 만족하고 그 때문에 하나님을 불러주고 섬겨주는 입장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가짜입니다. 따라서 항상 자신을 절대화하는 인간으로서 행하는 모든 것이 가짜인 것이고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직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생명의 은혜를 담아 증거 할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해 하나님이 살게 하신 것임을 알게 된 그것이 믿음이며 신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자로 부름 받고 신자로 존재하게 된 이유임을 생각한다면 그리스도도 십자가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막도 제사장도 이러한 기준과 시각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15절에 보면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라고 말씀합니다.

 

 

판결 흉패는 길이와 너비가 한 뼘 크기이고 각기 다른 보석 열 두 개가 네 줄로 물려 있습니다(16-20). 그리고 열 두 개의 보석에는 이스라엘 열 두 아들들의 이름이 하나씩 보석마다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깁니다(21).

 

 

흉패의 보석에만 이스라엘 열 두 아들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9절의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라는 내용을 보면 호마노란 보석 두 개에 각기 여섯 이름을 새깁니다. 그리고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어 부요와 평강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의미로 열 두 이름을 보석에 새기게 하신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 중심적인 해석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실까요?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드러났던 이스라엘의 행보를 보면 귀한 존재가 아니라 이방 나라와 동일하게 심판을 받아야 할 악한 인간일 뿐입니다. 즉 열 두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 이름을 보석에 새기게 하시는 것일까요?

 

 

29절에 보면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구원 받을 수 없는 죽음의 속한 이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가치도 없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가슴에 붙은 흉패에 붙여져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즉 제사장에게 속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 제사장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성소에서 나오게 됨으로써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죽음의 이름이 아니라 산 자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과 흉패로 인해서 드러나는 구원의 내막입니다.

 

 

제사장도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희생 제물의 거룩한 피를 몸에 묻힙니다. 제사장 역시 죽음의 존재일 뿐이지만 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도 죽지 않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 될 정도로 변화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어떤 노력으로도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몸에 피를 묻히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죄는 희생 제물의 피로만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나아간 제사장이 죽지 않은 것은 피로 인한 하나님의 용서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속한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 또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로 구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에는 이스라엘의 노력이나 열심, 헌신, 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고 다만 희생의 피만 가치 있는 것으로 높임 받을 뿐입니다. 이것이 열 두 아들의 이름이 보석에 새겨진 이유입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이스라엘이 귀하다는 뜻의 보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 보석같이 귀하고 빛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용서로 구원 받은 이스라엘은 보석 같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높이고 자랑할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 부름 받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고후 4:7절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처럼 보석에 이름이 새겨진 이스라엘은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해서 질그릇이 금그릇이 되지 않는 것처럼 이름이 보석에 새겨졌다 하여 이스라엘이 보석 같은 존재가 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30절에서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어떤 모양인지 또 어떤 재료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제사장의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제사장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사장이라 해도 인간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21절에 보면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라고 말씀합니다.

 

 

보석에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이름을 새겼다면 그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름이 새겨진 보석을 흉패에 붙이고 마치 제사장의 지체가 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세우신 방식이고 구원의 원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원칙에 인간의 의로움은 없고 다만 하나님의 용서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백성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17-20절을 보면 열 두 이름은 각기 다른 보석에 새겨집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일하게 흉패에 붙여지는 것은 사람은 다르다 해도 동일한 하나님의 원칙에 의해 구원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인 것이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방식에 의해서만 참된 백성이 존재하게 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체로 부름 받은 자들이 생명에 속한 천국 백성이 됩니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고 원칙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 앞에서는 인간의 의가 아닌 십자가의 의로움만 높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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