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6 15:42

(120강) 위임식의 숫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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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9:19-25

출 29:19-25http://onlycross.net/videos/exo/exo-291925.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9.너는 다른 숫양을 택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20.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21.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22.또 너는 그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것의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지라 이는 위임식의 숫양이라

23.또 여호와 앞에 있는 무교병 광주리에서 떡 한 개와 기름 바른 과자 한 개와 전병 한 개를 가져다가

24.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주고 그것을 흔들어 여호와 앞에 요제를 삼을지며

25.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설교>

제사장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는 구약 시대의 제사를 주관하는 직분으로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제사장 직분은 예수님으로 완성되었다면서 관심을 두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 제사장이 없고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신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제사장을 세워서 증거 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서 관심 두지 않는 것이면 분명 제사장에 대해 잘못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는 것은 제사장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제사장을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세우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고 감사와 찬송의 자리로 나오게 함으로 영광 받고자 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구약의 제사장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 또한 알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는 우리를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로 연결됩니다. 따라서 제사장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우리를 신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 또한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뜻을 위한 신앙의 틀을 구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죽음의 흔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1절에 보면 제사장 위임식에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가 등장합니다. 수소는 속죄제에 사용되고, 숫양 한 마리는 각을 떠서 불태워지는 번제로 한 마리는 그 피를 제사장의 몸에 바르고 제단 주위에 뿌려지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장면을 상상해 보면 위임 받는 제사장을 축하한다기보다는 비참함을 보여주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임식 현장이 온통 제물로 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대접 받고 영광을 얻는 자리라면 위임 받는 아론과 아들들에게 위임식은 축하의 행사여야 합니다. 하지만 제사장의 몸에 숫양의 피를 바르면서 대접받고 영광을 얻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제물의 피가 상징하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20절을 보면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레 14:14절을 보면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레위기 14장은 나병 환자가 나았을 때 행하는 정결의식에 대한 것인데, 제물의 피를 바르는 신체 부위가 제사장 몸에 바르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몸에 피를 바르는 것이 단지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제사장 또한 하나님의 저주를 의미하는 나병 환자임을 보이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제사장도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죄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저주의 자리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제사장을 도구로 사용해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안다면 위임 받은 아론과 아들들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히 여기심과 자비하심을 제물에게서 확인하며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제사장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 10:1-2절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다른 불은 제단의 불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불은 모두 같습니다. 제단의 불이라고 해서 색깔이나 불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뜨겁고 물체를 태우는 것 또한 같습니다. 그래서 나답과 아비후도 아무 불이나 향로에 담아 분향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 제단의 불이 일반 불과 달랐다면 다른 불로 분향했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제단의 불을 원하셨고, 다른 불로 분향한 것에 대해 죽이는 것으로 진노를 보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게 합니다. 보이는 것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향로에 불을 담아 분향하는 그 행동을 보시고 받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착함과 선한 행실로 신자다움을 보이고자 하는 것 또한 의미 없는 헛된 수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보이는 자기 행실을 의로 내세우는 것이 나답과 아비후가 제단 불의 의미를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것일 뿐입니다.

 

 

18절을 보면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고 말하고, 25절을 보면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몸이 찢겨지고 불태워지는 냄새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냄새, 향기로운 냄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천과 행실들이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인간을 보지 않으시고 제물만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제물이 불에 태워지며 나는 냄새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제물의 죽음은 거룩한 죽음이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어떤 행실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에 태워지는 숫양이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기 위해서는 비참한 자리에서 불에 태워져야 합니다. 그것도 자기를 위해 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거룩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데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인간은 누구도 그런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일에 제사장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제물의 피로 인해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되는 하나님이 확정해 놓으신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을 백성들에게 보이고 증거 하는 것이 제사장 직분의 의미입니다.

 

 

오늘날 예배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확인하고 감사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형식으로 모인다 해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을 외면하고 인간이 뭔가 이루겠다고 설친다면 예배를 위해 수백 수천 번 모인다 해도 예배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 구원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답과 아비후처럼 다른 불을 분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물이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더 이상 반복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누구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모르는 것이고, 예수를 보지 않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 밖에 있는 것임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하고 선교하고 구제한다고 해서 교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그 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증거 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증거 하는 것이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는 인간의 어떤 행위도 의로움이나 자랑으로 등장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인간이 의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다스림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열매일 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십자가만 자랑 한다는 말 또한 믿음을 빙자하여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믿음 가운데 있다면 모든 것이 인간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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