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7 16:13

(123강) 분향할 제단

조회 수 59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성경본문 출 30:1-10

출 30:1-10http://onlycross.net/videos/exo/exo-300110.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너는 분향할 제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2.길이가 한 규빗, 너비가 한 규빗으로 네모가 반듯하게 하고 높이는 두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이어지게 하고

3.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 면과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를지며

4.금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쪽에 만들지니 이는 제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5.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6.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7.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8.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9.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10.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설교>

예수님은 모세와 모세의 글을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5:46-47)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우리는 모세와 모세의 글을 믿는다고 확신에 찬 말을 한다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모세를 믿지 않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모세의 글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모세의 글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요구하는 규범으로만 믿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글을 믿는 것도 아는 것도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기독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실상이기도 합니다.

 

 

5:39절에 보면 예수님은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모든 글로 인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관심은 자신이 복 받고 구원 받는 것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성경이 제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 할 때마다 인간의 복과, 구원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다면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님으로 압축됩니다. 모세의 글도 예외는 아닙니다. 십계명과 다른 모든 규례들, 그리고 성막에 대한 내용까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기에 예수님으로 압축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에는 십계명과 모든 규례, 그리고 본문의 내용까지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막 기구 중의 하나인 향단을 만들라고 합니다. 향단은 향을 피우는 단입니다. 길이가 한 규빗(45), 너비가 한 규빗, 높이가 두 규빗 크기의 향단을 만들어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론이 아침과 저녁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라는 것이 향단에 대한 하나님의 규례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합니다. 향단 역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합니다. 그리고 성막 전체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합니다. 하지만 성막에 대한 내용을 무작정 예수님으로 끌어다 해석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성막을 예수님으로 연결하여 이해했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인간의 공로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공로만 인정하고 예수님의 희생만 높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언하는 바른 믿음입니다.

 

 

그리고 성막 역시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성막으로 증언되는 것은 죄 없는 제물의 희생이고, 제물의 희생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막을 통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 믿음은 자신의 공로, 의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피의 공로만 높이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처럼 바른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자연히 자신의 공로와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은 믿음 아닌 것으로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막으로 예수님을 증거 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인간의 공로와 의에 가치와 무게를 둔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지 않고 모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말한다고 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항상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다니고 교회 일에 참여한다는 것을 이유로 자기 믿음을 스스로 신뢰하는 것도 대단한 착각입니다. 성막은 우리의 이러한 모든 착각과 오류를 무너뜨리면서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성막에 담긴 내막을 아는 것은 매주 중요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향단에 대한 내용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7절을 보면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라고 말씀합니다.

 

 

향단은 향기로운 향을 사르기 위한 도구입니다. 향단에서 살라지는 향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그리고 향단으로 인해 성소는 하나님께 즐거움이 되는 향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신자의 믿음의 실천과 활동으로 하나님께 즐거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향으로 이미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어 있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지 자기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믿음이 아님을 아는 자인 것입니다.

 

 

6절에 보면 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더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지성소를 인간이 마음대로 침범하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됨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인간과 만날 곳을 마련해 주셨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더러운 존재가 거룩을 입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거룩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을 속죄소에 뿌려진 흠 없는 제물의 피로 이루신 것입니다. 더러운 인간의 죽음을 흠 없는 제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시고 그 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한 자로 여기시며 만나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죄소입니다.

 

 

이 속죄소 앞에 향단을 두게 하시고 아침과 저녁으로 향기로운 향을 피우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즐거움이 되는 향기로운 냄새는 속죄소에 뿌려진 제물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제물의 피가 하나님께 즐거움이 되고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믿음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미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믿음의 세계에 인간의 것은 그 어떤 것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10:1-2절을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라고 말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의 이유는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한 것입니다. 향은 꼭 여호와가 정한 불로 태우라고 명령하셨는데 그것을 가볍게 생각하고 다른 불로 담아 분향한 것입니다. 어떤 불이든 향을 태워서 향기만 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불이 따로 있다는 사실은 묵살하고 어떻게든 분향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이런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불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담긴 분향단으로 인한 향기가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 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가 담겨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께 즐거움이 되고 만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개의 기독교인이 이해하는 것처럼 인간의 선행이나 열심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로 자처하는 곳에서 마다 외쳐지는 것은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는 선동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님이 피 흘리심으로 죄인 된 자를 거룩하게 하신 십자가의 은혜는 정작 예수를 믿는다고 자신하고 자부하는 교회에 의해서 무시되고 묵살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바른 믿음에 있다면 믿음인 듯 믿음 아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서우신 분입니다. 다른 불을 담아 분향했다는 이유 하나로 가차 없이 심판해 버리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정하신 불의 세계에서는 용서로 우리를 만나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신 불의 세계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만 믿고 바라봐야 합니다. 피의 은혜가 담긴 자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이 분향할 제단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성경본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설교 원고는 없습니다 신윤식 2022.01.01 938
공지 암, 옵, 욘 성경강해 방으로 옮겼습니다. 신윤식 2011.02.28 7261
공지 이전 홈페이지 수요일설교 들어가기 은석교회 2010.01.01 40031
138 출 32:30-35 (134강) 여호와의 책 신윤식 2020.05.30 858
137 출 32:25-29 (133강) 헌신 신윤식 2020.05.23 1382
136 출 32:15-20 (131강) 깨어진 돌판 1 신윤식 2020.05.19 408
135 출 32:21-24 (132강) 추궁과 변명 신윤식 2020.05.16 879
134 출 32:7-14 (130강) 모세의 기도 신윤식 2019.09.28 2113
133 출 32:1-6 (129강) 금송아지 신윤식 2019.09.21 625
132 출 31:12-18 (128강) 안식일 신윤식 2019.09.07 679
131 출 31:1-11 (127강) 지혜 신윤식 2019.08.31 516
130 출 30:22-33 (126강) 거룩한 관유 신윤식 2019.08.24 709
129 출 30:17-21 (125강) 물두멍 신윤식 2019.08.17 795
128 출 30:11-16 (124강) 생명의 속전 신윤식 2019.08.03 1886
» 출 30:1-10 (123강) 분향할 제단 신윤식 2019.07.27 592
126 출 29:38-46 (122강) 늘 드릴 번제 신윤식 2019.07.20 533
125 출 29:26-28 (121강) 요제물과 거제물 신윤식 2019.07.13 1958
124 출 29:19-25 (120강) 위임식의 숫양 신윤식 2019.07.06 593
123 출 29:10-14 (119강) 속죄제 신윤식 2019.06.29 562
122 출 29:1-9 (118강) 제사장 위임 신윤식 2019.06.21 517
121 출 28:40-43 (117강) 제사장 직분 신윤식 2019.06.08 618
120 출 28:36-39 (116강) 패 신윤식 2019.06.01 545
119 출 28:29-30 (115강) 판결 흉패 신윤식 2019.05.11 855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