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7 15:56

(125강) 물두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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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30:17-21

출 30:17-21http://onlycross.net/videos/exo/exo-301721.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19.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21.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설교>

사람은 예수님보다 천국에 관심을 둡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아닌 자신이 들어갈 것으로 믿는 천국에 관심이 향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믿음이 천국에 갈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고, 천국에 들어간다 해도 어떤 상을 받는지의 여부가 믿음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관심이 포기됨을 뜻합니다. 자기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십자가의 은혜를 훼방하는 원수 된 것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예수님께 관심을 두게 되면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 주를 찾는 모든 것이 오히려 저주를 쌓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포기되는 것이 주께 나아가는 사람의 바른 태도인 것입니다. 본문의 물두멍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18절에 보면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고 말씀합니다.

 

 

물두멍은 물을 담아 두는 지금의 대야와 같은 것입니다. 크기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지만 1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제사장이 수족을 씻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사용하는 대야와 비슷한 크기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 즉 회막 문 앞에 두고 회막에 들어갈 때 수족을 씻게 하는 것입니다.

 

 

20-21절에서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수족을 씻지 않고 회막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합니다. 따라서 물두멍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물두멍이 수족을 씻는 것이기 때문에 제사장을 정결하게 하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음식을 먹을 때는 손을 씻어야 한다는 장로들의 전통이 있는 것도 본문의 물두멍의 규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기 전에 이미 제단에서 흘린 제물의 피를 몸에 바른 상태입니다. 29:20-21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제물의 피를 몸에 바르고 거룩함을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시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어 정결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물두멍이 정결을 위한 것이라면 제물의 피를 몸에 바른 것으로 부족하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씻지 않으면 부정한 인간으로 인정되어 죽임을 당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제물의 피를 몸에 바름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을 헛된 것으로 돌리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물두멍은 제단과 회막 사이에 위치합니다. 회막은 성막과 같습니다. 다만 성막은 하나님이 영광으로 함께 하시는 거룩한 곳, 회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회막 앞에 물두멍을 두고 수족을 씻고 회막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지 수족을 씻는 행위에 의미를 두게 되면 자기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함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행함이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에게 행함의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행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때문에 인간이 추구하는 행함은 인간 능력의 한계 안에서 맴돌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행함으로는 자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제물의 희생의 피로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한 자로 여기심으로 인간에게 함께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훼방하고 멸시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행함에 대한 노력이 오히려 저주를 쌓는 결과만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행함에 대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행함은 인간에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무시하게 되면 행함에 초점을 두게 되는 종교세계로만 발전할 뿐임을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제사장이 제단에서 흘린 제물의 피를 몸에 바름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입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은 자로 회막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제물의 피가 없다면 제사장도 이스라엘도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저주의 존재일 뿐입니다. 희생의 피가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자리하고 있는 거룩한 공간인 회막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이 몸에 제물의 피를 바른 것으로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희생 제물의 피가 더러운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몸에 제물의 피를 바른다 해도 인간의 악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물이 흘린 피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입은 거룩한 존재로 인정되는 것이지 피를 바른 것에 효능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님의 피에 인간의 죄를 사라지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피를 믿는 믿음이 우리를 죄 없는 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거룩에 함께 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피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의미를 물두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두멍은 솔로몬 성전에서는 바다로 불려집니다.(대하 4:6)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바다인 홍해를 건넜던 것을 생각하면 제사장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는 것은 자신들의 행위와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과 자비 덕분에 살았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희생을 피를 믿는 믿음은 인간의 모든 선함과 행함이 부인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는 것으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15:2-3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바닷가에 서서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죽음의 바다를 건너게 하신 것이 어린양의 희생의 피의 능력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노래에 인간의 행함은 담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은 인간의 행함을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7:21). 6장에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고 책망합니다. 6장에서 비판하지 말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냐는 등의 말씀이 있는 것은 자신이 심판을 받아야 할 저주의 존재라는 것을 알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거룩함을 입고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믿는 믿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총으로 주신 믿음이 이것이고,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십니다. 이것이 제단과 회막 사이에 놓인 물두멍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믿음의 실상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증거와 열매를 인간의 행함으로 연결하는 것은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멸시하는 것이며 이것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회막이 선한 인간이라는 조건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처럼 천국은 선하고 믿음에 열심이 있다는 것 때문에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만 들어가기에 믿음을 모르는 것이 곧 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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