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1 16:17

(129강) 금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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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32:1-6

출 32:1-6http://onlycross.net/videos/exo/exo-32010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설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숨어 계시는 하나님으로 말했습니다(45:15). 하나님은 왜 숨어 계시는 것일까요?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게 하시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맞다라고 반응할 것입니다. 숨어 계시는 것보다 나타내시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을 더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강조하면서도 행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이면 옳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행함으로 증거 되어야 한다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행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감추어진 비밀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것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음을 눈에 보이고 경험되는 것으로 만들어 확인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행함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숨어 계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으로 구체화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숨어계시지 않고 인간이 놀랄만한 모습으로 드러내셨다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드러내는 모습을 신으로 섬기면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하나님이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나타나셨습니다. 만약에 그 떨기나무가 불꽃이 타는 채 그대로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알고 나무를 하나님으로 섬길 것입니다. 그것이 보이는 것을 좇는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인간의 속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으로 올라간 후에 40일이 되어도 내려오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한 모세를 의지했던 이스라엘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는 그들로서는 자신들을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도와 인도할 신을 필요로 했습니다. 모세가 없으면 없는 상태로 있으면 되는데 모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모든 일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고 바로를 치심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보내게 하셨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도 쓴 물을 달게 하셔서 먹게 하신 것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모든 것을 모세로 인한 것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던 모세가 없는 상황이 불안했기에 자신들이 의지할 신을 만들 것을 아론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아론은 백성들에게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고 조각칼로 송아지 형상을 새겨 만들어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4)라고 합니다.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송아지 형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 내는 이것이 우상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인간이 믿고 싶고 의지하고 싶었던 신은 다름 아닌 자신들을 돕고 좋은 곳으로 인도해줄 신이었습니다. 아론이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온 백성이 자기를 위한 신을 섬기는 일에 하나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인간이 자기를 위한 신, 우상이라는 이름 아래 일치된 모습으로 함께 한다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심판의 존재로 드러남을 보여줍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를 위해 좋은 곳으로 인도해 줄 신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부르고 찾습니다. 마음속에 금송아지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동일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으로 공경하는 것처럼 나를 위한 나의 신을 만들어 하나님으로 공경하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고집하는 것입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내신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저주 아래 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십자가에서 자기 죄를 보지 못합니다. 자기 구원을 위한 십자가로만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해 신을 찾는 인간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우상 숭배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도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아픔보다는 자기의 복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피 흘리신 십자가 길을 예수님만 가시면 되는 길로 생각할 뿐 내가 가야 하는 길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손해 보는 것, 힘들어 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복음은 그처럼 죄로 인해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용서의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믿음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의 본색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신을 찾았던 모든 것이 가짜였고 위선이었음도 보게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 돌판을 들고 온 모세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심판의 현장으로 드러난 것처럼 우리가 심판의 존재라는 사실을 말씀이 드러내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이기 때문에 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처럼 인간이 만든 종교의 세계일뿐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쉬운 문제로 생각합니다. 우상이 인간의 본색을 보여준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이스라엘처럼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았고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우상인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가 우상을 섬기는 집단으로 전락되었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무감각합니다.

 

 

앞으로 우상 섬기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은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인간 자체가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손잡아 주신 우리가 누구인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손을 잡아줄 만한 사람을 잡아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옥으로 밀어 넣어야 할 우상숭배자의 손을 잡아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의 손에 붙잡힌 자가 신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나의 손을 잡고 이끌어 가시는 주만 바라보면 됩니다. 주만 바라본다는 것은 주여, 무엇을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지옥 가도 할 말없는 나를 오늘도 손잡아 이끌어 가십니까?’라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는 주가 전부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이런 만남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에서 내 신앙은 의미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신앙에 신경 쓰는 것이 수상합니다. 좋은 신앙인이 되려는 의도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 좋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위해 오셨다는 말씀처럼 우상숭배자인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십자가를 보게 되면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주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인간으로 주께 나오십시오.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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