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1 16:15

(80강)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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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0:13

녹화가 잘못되어서 음성, 영상 파일이 없습니다.

 

<본문>

13.살인하지 말라

 

 

<설교>

선악과를 먹은 인간에게는 선악개념이 자리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입니다. 다만 믿음이 있게 되면 자신에게 있는 선악개념을 보게 되고 그것을 선악과를 먹은 악함으로 받게 됩니다.

 

 

인간이 선악개념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믿음에 대한 반응에서 드러납니다. 기독교인이‘나는 주일도 지키고 봉사도 하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니까 믿음으로 산다’고 간주하는 것이 선악개념에 의한 자기 판단입니다.

 

 

또한 비기독교인이‘나는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예수 믿는 마음으로 산다’는 말을 합니다. 예수 믿는 마음을 착한 일 하고 양심 바르게 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에서 선한 것을 찾고, 선한 행동이 있기에 착하고, 착하기 때문에 복 받고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인간중심의 생각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선악개념입니다.

 

 

이러한 선악개념으로 여섯째 계명인“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대하면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아마 자신은 살인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찔림과 같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나는 지금까지 사람을 죽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자신감으로 마음에 철판이 깔리는 것입니다. 살인에 대한 계명은 지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 목숨을 빼앗지 말라는 의미가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의 살인금지법은 이미 세상의 모든 나라에 공통적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살인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비록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 해도 사람이 죽게 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애굽이나 가나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빠져 나온 애굽도, 그리고 들어갈 가나안도 살인을 금지하는 법은 있습니다. 애굽도 가나안도 사람이 함께 하는 사회인데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의견을 달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 전에 살인 하지 말라는 법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듣기에는 전혀 새로운 법이라고 할 수 없고 애굽도 가나안에도 있는 법을 왜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요일 3:15절을 보면“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말합니다. 살인의 의미가 형제를 미워하는 것까지 확대되어 언급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1)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고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살인하지 말라는 법은 세상 법보다 더 수준 높고 광범위한 법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보다 더 수준 있는 윤리와 도덕을 행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해석일 뿐이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도 모르고 요한일서의 내용 또한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십자가를 믿는 지금의 우리에게 살인은 미워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미움이 곧 살인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살인자라 해도 반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이스라엘의 입장은 도외시한 일방적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이스라엘에게 넘겨 치게 하실 때 그들을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진멸하라는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모두 죽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나안 족속은 진멸 당하되 불쌍히 여김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이 반대로 살인을 명령하는 모순적인 상황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우리의 고정된 생각으로 인해서 말씀이 서로 부딪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어린양의 피에 의해서 죽음의 재앙에서 건짐 받고 애굽을 나오게 된 이스라엘이란 공동체 안에서 통용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세상 법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세상은 어린양의 피로 죽음에서 구출된 경험이 없는 인간 사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로 죽음에서 구출된 은혜의 경험이 있는 공동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단지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가 아닌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살인의 의미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는 법을 세워서 살인을 금지 합니다. 이것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법이고 질서이기에 누구든 이 법을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의 살인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만 해석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단순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다른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고 언약에 의해서 애굽에서 구출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 어린양의 피로 인한 구원임을 보여주기 위해 애굽의 장자 재앙에서 어린양의 피로 죽음에서 구출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죽음에서 구출된 언약 백성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어린양의 피가 아니면 그들 또한 애굽과 동일하게 죽음의 존재였을 뿐입니다. 이것은 광야의 생활을 통해서 낱낱이 드러납니다. 원망과 불평만 일삼는 살아있는 가치가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린양의 피의 효력입니다. 이처럼 어린양의 피의 효력 아래 존재하는 것이 이스라엘이란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존재할 때의 기준은 어린양의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자기의 기준과 시각에서‘너는 죽어도 된다’라는 판단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너에게 세워진 기준이 뭐냐?’를 묻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가 기준이 된다면 살인은 단지 사람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를 멸시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어린양의 피의 은혜를 아는가?’라는 물음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수 17장에 보면 요셉 족속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자손이 자신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큰 민족이 되었는데 한 분깃만 분배한 것에 대해 불평 합니다. 자신들이 요셉 족속으로서 특별히 하나님께 복을 받아 크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 기준입니다. 그들 또한 다른 자손과 동일하게 어린양의 피의 은혜로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 것입니다.

 

 

삿 12장에서는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암몬 자손과 싸우러가면서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 것에 분노하면서‘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모조리 죽이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실상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이미 그들은 살인한 자로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살인이라는 본성으로 살아갑니다. 누군가로 인해 분노하게 되고 보복하고 싶은 충동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보다는 나의 본성에 충실한 자로 산다는 것이 수시로 발각됩니다. 이것이 형제에 대한 살인입니다.

 

 

형제를 죽이고 그것이 곧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멸시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있는 자기 정당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으로 인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이 우리를 예수 안에 있게 하심으로 계명의 완성이라는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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