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8 16:08

(84강) 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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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0:17


<본문>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설교>

십계명의 마지막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20:17)입니다.

 

 

십계명의 전문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0:2)인데 이 전문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십계명 해석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해석할 때 대개의 사람은 다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를 인간에 대해 지켜야 할 계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도덕적 계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살인의 문제부터 탐심까지 인간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지켜져야 할 규례와 질서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도덕이라고 합니다.

 

 

현대 교회를 보면 이러한 도덕을 강조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탐심의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탐심이 없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탐내지 말라는 계명 앞에서 우리는 실패의 존재일 뿐입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의 계명을 문자로 이해하여 잘 지키고 있음을 자부한다 해도 탐심은 문자로 이해한다 해도 지킨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앞의 모든 계명을 통과했다 해도 마지막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탐심의 계명 하나가 걸림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십계명을 문자로 해석하면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탐심은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의 방식은 은혜입니다. 무조건적인 은혜라는 방식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올 수 없고 애굽이라는 죽음의 세상과 그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존재였을 뿐입니다. 비록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애굽에서 구원되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이나 섬김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방식으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변함없이 은혜의 방식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마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굳건히 세워져야 하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한다는 믿음인 것이고, 이 믿음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라는 것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은혜는 인간의 의와 행함에 의해 가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높임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와 의가 자랑되고 높임 받는 결과만 초래하게 됩니다. 이것을 의도하여 계명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것이 곧 탐심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탐심을 무엇인가를 더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죄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웃의 집을 탐낸다 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웃의 집을 탐내는 것이 이웃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탐심이 행동으로 이어져서 강제로 빼앗을 때 그것을 죄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행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탐심 자체를 죄의 문제로 다룹니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은 세상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을 요구하시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탐심은 도덕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있었던 장자 재앙이 의미하는 것은 애굽이 곧 죽음의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것은 죽음에서의 구출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이 애굽을 죽음의 세상으로 보지 않는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그것은 바로 애굽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애굽의 것만 있으면 자신의 삶이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탐심에 해당됩니다.

 

 

다시 말해서 탐심은 현재의 자신을 더 좋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것은 돈이 있으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자가 되고 싶어 하고 그것을 위해서 땅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탐심입니다.

 

 

이러한 탐심에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겠다는 것도 있고, 말씀을 잘 실천해서 신자답게 되겠다는 것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서 좀 더 가치 있는 인간으로 존재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탐심인 것입니다. 인간은 심판과 저주의 존재일 뿐인데, 그런 존재가 높은 자리에서 가치 있는 인간으로 존재하겠다는 것이 인간의 주제를 넘어선 것이고 이것이 탐심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되고자 하는 꿈이 있고 기대가 있고 목표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과 기대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그 이름을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우리를 세워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일이 포기되어야 할까요? 하나님께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고 나의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자신들의 기대에 맞지 않는 환경에 있다 해도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지는 현실에 있습니다. 세상이 죽음에 속해 있음을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좋은 현실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세상의 것을 얻음으로써 현재보다 나아질 자신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행하셔서 말씀을 이루시는 세계에 속해있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탐내지 말라는 계명의 의미입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세상 것을 소유했다는 것이 자랑 되거나 힘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약속의 땅에서 자랑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돈 많은 나, 믿음 좋은 나, 인격 좋은 나, 이 모든 것은 탐심일 뿐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만 증거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땅의 것으로 자신을 돋보이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야 말로 은혜에 머물지 않는 것이며 탐심입니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약속의 땅에서의 이스라엘은 땅의 것의 여부에 따라 높고 낮음으로 차별되는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의 집과 이웃에게 있는 것을 탐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한다는 방식을 외면하고 세상 것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애굽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됩니다. 이웃의 집을 탐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도 신자 된 우리의 존재 방식입니다. 여러분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인 대로만 판단하면 돈일 수 있고 가족일 수 있고 직장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 때문에 세상의 것이 사람과 사람의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흠 없는 거룩한 자로 여김 받게 하고 죽음에 있던 우리를 부활의 생명에 있게 했습니다. 신자는 세상의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산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선을 은혜가 아닌 나에게 두게 되면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보입니다. 우월한 사람에 대해서는 탐심이 발동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교만이 발동합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써 이루신 성취의 세계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결과입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십자가에 두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직 은혜로만 얘기가 가능한 십자가에 시선을 둔다면 우리가 세상의 것으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은혜를 멸시하는 것이고 나의 존재를 넘어서는 탐심인 것을 알 것입니다. 십계명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면서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성취된 십자가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전부라는 고백에 머물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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