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3 16:26

(29강) 현실 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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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8:8-15http://onlycross.net/videos/exo/exo-08081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9.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10.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11.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12.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13.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14.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5.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설교>

기독교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신앙에 대해 큰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신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뻐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께 행하시는 일들을 기뻐하고 좋아하며 감사합니까?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믿음을 확인하고 성찰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생각으로만 판단하고 계산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신앙하는 이것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믿음입니다.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결국 우리에게 복이 되는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사랑이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결국 우리에게는 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삶은 어떻습니까? 아마도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사람은 지극히 현실지향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지향적인 시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되면 마음에 드는 일이 없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 방식인 십자가는 마음에 드십니까? 그보다는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악한 세력을 제거해 버리시고 우리를 죄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방식인 십자가 또한 좋아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신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라고 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 ‘신자는 이래야 한다’는 틀을 구축하고 그 틀에 의해 자기 신앙을 저울질하기 때문에 혼란과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태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좋아하지 않고, 불평과 불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신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신자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해서 내 본성으로는 갈 수 없는 생명의 길을 가게 됨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임을 확신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이 신자의 다른 점입니다.

 

 

신자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입장을 고려하시면서 우리가 원하는 육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을 목적으로 일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대로만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으로 다가오기에 신자는 현실을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현실 모면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애굽의 바로와 다르지 않음을 재앙에 대한 바로의 반응을 통해서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재앙으로 강과 은하와 못 위에 있던 개구리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결국 바로는 애굽의 온 땅이 개구리로 뒤덮인 현실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여호와께 구하여 개구리를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애굽의 요술사도 개구리를 땅으로 올라오게 할 수는 있었지만 땅으로 올라온 개구리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의 어떤 힘으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돌이키거나 막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바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개구리를 올라오게 한 신에게 구하는 것뿐입니다.

 

 

바로는 개구리를 떠나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하겠다고 합니다. 여호와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그에 대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의 부탁대로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은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 나와 죽게 하십니다. 이것으로 바로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바로가 이스라엘을 내 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15절에서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고 말한 것처럼 마음을 바꾸어 모세와 아론의 말을 다시 무시해 버립니다. 단지 현실 모면을 위해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것을 외면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인 바로의 모습으로만 보입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실감하면서도 당황스러운 것은 이방인 바로에게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를 통해서 목격되는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가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착각이기도 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는 개구리를 떠나게 하면 이스라엘을 내 보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이스라엘을 바로 자신이 붙들고 있고 자신의 허락이 아니면 나갈 수 없다는 것이 바로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붙들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바로에게 붙들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약속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라면 바로와 상관없이 즉시로 이스라엘을 나가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로를 이기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바로보다 강하신 분이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는 것이 참된 현실임을 알게 하심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전부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로하는 이스라엘로 세워 가고자 하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수중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수중에 있기에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착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로의 착각처럼 우리 또한 내 수중에 있는 것을 내 뜻대로 관리할 수 있는 나의 소유로 생각합니다.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자기 수중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 양보할 의도가 없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내가 얻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주인도, 나의 주인도 하나님이라고 말했던 것들이 모두 위선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헛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맹세를 한다 해도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헌금을 얼마 하겠습니다’라는 식의 조건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봉사하려면 그에 합당한 조건이 요구됩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기 건강을 스스로 책임지고 지킬 수 있는 것입니까? 헌금을 하겠다는 것도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 해도 내가 지키고 관리할 수 없음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수중에서 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진짜 현실은 죽은 자가 살 수 있는 길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죽음이라는 자기 현실을 눈을 떴을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서 우리에게 일하실까요? 무엇보다도 죽음이 나의 현실임을 알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것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주셔서 드러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이 현실로 드러날 때 ‘이렇게 하겠습니다’는 말이 필요 없는 것이 예수 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신 세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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