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3 15:12

(43강) 죽음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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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1:4-10http://onlycross.net/videos/exo/exo-11041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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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5.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6.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7.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8.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따르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적을 더하리라 하셨고

10.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설교>

하나님은 네 번째 애굽 재앙부터는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별하십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재앙으로부터 구별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언약 아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재앙과 무관한 자로 존재하는 것은 언약으로 인한 혜택이며 이스라엘이 감사하고 찬송할 것은 언약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으로 존재하고 언약을 믿는 믿음에 인간은 개입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단지 언약으로 일하시고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이 믿음이 인간의 행함에 가치를 두고자 하는 것을 밀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별하시는 것도 이스라엘이 언약으로 누리는 혜택이 무엇인가를 보게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언약을 아는 이스라엘로 존재하는 것에 뜻을 둔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앙에서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언약에 속한 백성을 어떻게 대우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도면 신자는 적어도 세상의 보이는 것을 기준해서 신자 됨의 복과 가치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재앙에서 구별되고 있지만 그들의 처지와 신분은 여전히 애굽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죽음이 없는 세계를 뜻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곧 언약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재앙으로부터 구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입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우리가 육신을 기준으로 해서 은혜와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장자 죽음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의 처음 난 것 까지 모두 죽는다는 것이 장자 재앙입니다. 이러한 재앙이 있게 되면 온 애굽 땅이 통곡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곳은 조용할 것입니다.

 

 

이것을 7절에서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주변의 상황에 대해 민감한 개가 짖지 않고 조용하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평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장자 죽음의 재앙에서 구별되어 죽음이 없는 이스라엘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별해주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께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신다는 이 모든 것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보이기를 원합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의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잘되고 높아지고 평안을 누리는 것으로 세상에서 구별된 신자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으로 보이기를 원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믿음의 이유와 가치와 증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구별하셔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 장자의 죽음이 있을 것을 경고 하신 것은 애굽이 곧 죽음의 세계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장자 재앙에서 구별하시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건지신 것이 됩니다. 애굽과 동일하게 죽음이 당연한 이스라엘이지만 죽음에서 구별하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복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별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구별하심으로 인해 죽음에서 구출된 언약 백성으로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애굽의 바로처럼 완악한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죽음이 마땅한 나 같은 자를 창세전부터 구별하시고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구별이며 최고의 대우이고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죽음의 세계에서 구별하신 은혜를 입은 자로 살아갑니다. 이 은혜가 기독교에 흐르고 있는 본질적 내용이기 때문에 세상의 보이는 것으로 은혜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린 종교로 전락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별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구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이스라엘로 세워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별이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별은 구별의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 도구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별이 증거 하는 은혜와 사랑을 아는 백성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육신을 위해 살아가지만 이스라엘은 죽은 자를 살리신 은혜와 사랑을 기준으로 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자기 위주의 삶을 추구하는 인간이 순전히 하나님의 누구신가를 증거 하는 삶에 관심을 둘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성경에서 증거 하는 영원한 생명이나 영광의 문제는 역사 세계에서 확인할 수 없을뿐더러 경험할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것은 제아무리 자신을 쇠뇌 한다고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자 하는 것으로 신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9,10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적을 더하리라 하셨고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모세의 말을 무시함으로써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로를 보면 이스라엘 또한 다르지 않음을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쫓아내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반응이며 그 세상에 우리가 속해있었습니다. 우리가 완악한 바로이고 따라서 죽음의 재앙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구별하셨고 예수의 피로 죽음에서 건져내신 것이야 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대우를 받은 것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 안에 있는 신자는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도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귀한 것이라 해도 죽음 앞에서는 가치도 의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자가 이 죽음에서 구별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신자 또한 육신의 죽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죽음은 거추장스러운 몸을 벗는 것일 뿐 실제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자는 죽음에서 구별되어진 하나님의 백성임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구별하심으로 생명에 속하게 된 것이 신자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희미하고 볼 수 없는 생명의 세계이고, 그래서 세상은 생명 자체를 무시하지만 이 생명에 소망을 두고 생명의 나라에 온전히 거하게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이 가는 길로 가지 않습니다. 신자는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보면서 그 길로 가게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생명, 이 둘의 세계를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구별이 곧 죽음에서 나를 건져 내신 것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생각은 여러분을 예수 안의 세계로 끌어가며 예수 안이 감사가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죽음의 재앙에서 구별된 존재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도 애굽과 동일한 죽음의 인간일 뿐이며, 그러한 자신들이 어떻게 죽음에서 구출되었는가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되었음을 증거 하는 것이 신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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