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0 17:39

(4강) 모세의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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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1-10http://onlycross.net/videos/exo/exo-02011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설교>

본문은 모세의 출생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출생은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사건입니다. 사실 모세보다 더 험난하고 극적인 사건 속에서 출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모세처럼 태어나서 버림받고 타인의 가정에 입양되어 자라게 된 이야기는 특별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세의 출생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할까요? 힘들고 어렵게 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이 초점일까요? 그렇다면 본문은 하나님이 빠진 모세라는 한 인간의 출생이야기로만 남을 것입니다.

 

 

모세는 ‘아들이 태어나거든 나일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는 바로의 명령 아래 태어납니다. 따라서 바로의 명령이 온 세상에,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힘을 발휘했다면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었어야 할 운명입니다. 하지만 모세를 낳은 엄마는 바로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석 달을 숨겨 키웁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숨길 수 없게 되자 모세를 살리기 위해서 갈대상자를 가져다가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모세를 담아서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고 모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 멀리서 살핍니다. 그리고 갈대 상자를 나일강에 목욕하러 온 바로의 딸이 발견합니다.

 

 

바로의 딸은 상자 안에 든 아기가 히브리 사람의 아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버리지 못하고 모세의 누이에 의해 모세를 낳은 친모를 유모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모세의 친모 즉 요게벳은 바로의 명령에 의해 버려야 했던 모세를 다시 자신의 손으로 키우게 된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모세는 바로의 명령에 의해 죽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살아납니다. 모세의 운명을 바로의 힘이 지배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바로의 권세를 이기시고 모세를 살렸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물론 그런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의 권세조차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지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만으로는 본문에 대한 이해가 약하다고 생각됩니다.

 

 

모세의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내었다’입니다. 바로의 딸은 모세를 나일 강에서 건졌기 때문에 모세라고 이름 지었겠지만 실상 모세는 나일강에 던져져 죽었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렇게 보면 모세라는 이름은 ‘물에서 건짐 받은 자’ 다시 말해서 죽음에서 건짐 받은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세의 출생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모든 상황이 하나님에 의해 주관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로의 딸에 의해 모세가 살고 이름까지도 모세라고 하게 돈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라면 적어도 주어진 상황에서 ‘너 때문이다’는 말은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굳이 모세를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은 장차 모세가 이스라엘을 데리고 애굽에서 나오는 출애굽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이 단지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전환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히 11:24-26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말합니다.

 

 

바로의 궁에서 자란 모세는 나중에 애굽 사람을 죽인 일로 인해 도망을 치게 됩니다. 이것을 두고 히브리서에서는 모세가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칭함 받기를 거절한 것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한 것으로 말합니다.

 

 

또한 상주심을 바라봄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고 그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 출애굽기의 내용과 다릅니다. 모세는 믿음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버린 것이 아니라 동족이 괴롭힘을 받는 것에 대한 울분을 이기지 못해 저지른 살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왜 믿음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모세에게 주어진 상황은 모세 개인의 인생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라는 인물의 성품이나 업적이 초점이 아니라 모세에게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고 자신의 현실을 바르게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바르게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는 현실로 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전부로 생각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이 있음을 믿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 뜻을 두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참된 출애굽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부모의 손을 떠나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지내다가 애굽 사람을 죽인 일로 궁에서 도망치게 된 것을 믿음으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거절한 것으로 말합니다. 성경과 다른 것 같은 이런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가 생각할 것은 성경은 한 인간의 업적을 소개하고 그의 훌륭함을 증거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란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이냐 사실이 아니냐?가 아니라 성경이 증거 하는 믿음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로 히브리서기자는 모세의 삶과 행적을 수단으로 하여 믿음이 무엇이며 출애굽이 무엇인가를 증거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모세는 물에서 건져내었다는 뜻이고 그것은 죽음에서 건져냄을 받았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장차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게 되면서 물에서 건져냄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물에서 건져내심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의 출생에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이며 주관입니다. 모세의 운명도 하나님께 있으며 무엇보다 죽음에서 건짐 받은 구원의 권세가 하나님께 있음을 통해서 구원을 위해 우리가 행할 것은 없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살아가시면서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십니까? 우리의 걱정과 염려의 중심에는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자 하는 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성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보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 다시 말해서 세상 권세에 속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또한 하늘의 상을 말하면서도 세상에서의 재물을 좋아합니다. 하늘의 상 주심이 세상에서의 무엇보다 더 큰 보화라는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믿음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속한 사고방식,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이 같은 실상을 바르게 직시하면서 그것이 곧 죽음에 처한 것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상태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죽음입니다. 세상 권세도 우리를 죽음에 붙들어 놓기 위해 활동합니다. 그런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어떤 권세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일이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죽음에서 건짐 받은 하늘의 속한 자입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상황은 하늘에 속한 자로서 생명의 길에 붙들어 놓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며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인생을 꿈꾸기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될 인생을 꿈꾸시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대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게 할 것이고 날마다 하나님의 간섭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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