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11 17:09

(17강) 백성의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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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4:27-31http://onlycross.net/videos/exo/exo-04273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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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7.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28.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알리니라

29.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30.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31.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설교>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고, 아론을 만난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을 알립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백성들의 경배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과연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지, 경배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말합니다. 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는 것을 경배로 이해할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은 무시하고 자기 생각에 맞는 것을 옳은 것으로 고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자기 생각에 경배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하나님도 경배로 받아주신다고 믿어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고, 자연히 우리의 잘못된 생각도 알게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존재나 일하심을 우리의 기대와 생각의 틀에서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이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가며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잘못되었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났는가를 실감하는 것입니다.

 

 

답은 언제나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우리의 종교적인 틀이 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이 끌어가시는 신앙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던 것들이 믿음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했던 것들이 경배가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30,31절을 보면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백성들이 머리 숙여 경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셨다는 것으로 경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고통을 겪는 이스라엘 지손을 찾으시고 살피셨다면 그 의미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우시고 평안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으로 해석할 것입니다. 이것이 경배의 이유인 것입니다.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는 자신의 생존과 운명을 위해서입니다. 생존의 미래와 운명을 알 수 없는 현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생존을 누리고 운명이 되게 하기 위해 초월자인 신을 찾고 믿는 것입니다.

 

 

신을 찾는 인간은 신이 인생과 운명을 주관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을 섬기고 경배하면 신은 자신을 도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노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경배에도 이러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찾으시고 살피신 일들이 자기의 생존과 운명을 돕고자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아론의 말과 함께 행한 이적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굳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실 것을 믿으면서 경배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아직 자신들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배하는 백성들이 아니라 오히려 원망과 불평으로 대항하는 존재일 뿐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누리게 될 편안한 삶을 기대하고 소망했을 뿐,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삶을 누릴 자격도 가치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40년의 세월동안 나그네로 유리하게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신 8:2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배워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뜻을 가지시고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사고와 틀 안에서 멋대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현재의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오류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고 자기 생존과 운명에만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 뜻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찾으시고 살피셔서 자신들이 원하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생각하고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의 사고에서 벗어난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안다면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고 경험하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신앙의 세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신앙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생존의 문제를 도와주고 기대하고 원하는 삶을 살게 하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머리 숙여 경배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종교 세계를 단호하게 부정하고 배격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싸우신 것도 그러한 종교 세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신 26:10절을 보면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토지 소산의 맏물을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경배의 조건이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제물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토지 소산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는 증거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과 불평으로 대적했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은혜로 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토지 소산의 맏물은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에 들어왔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알았다면 자신들의 손에 들린 소산이 자기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것이 될 수 없고,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할 것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 머리 숙여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경배가 무엇인가를 알고 경배하게 되는 신자는 전혀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생전에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해도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배의 깊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경배는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경배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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