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1 20:28

(118강) 제사장 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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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9:1-9

출 29:1-9http://onlycross.net/videos/exo/exo-29010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2.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3.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라

4.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5.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고

6.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거룩한 패를 더하고

7.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8.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설교>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성막에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지성소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이 생명나무의 길을 그룹들과 불 칼을 두어 차단하신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은 하나님께 제사하고 제물을 바치며 섬기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막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생명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 나무의 길이 에덴 동산 동쪽에 있는 것과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이 동쪽에 있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인 것입니다.

 

 

성막에 문이 있고 그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성소가 있고 성소로 들어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모든 길을 막으셨습니다. 에덴 동산의 생명 나무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 것이 여전히 인간의 현실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막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될 수 없음을 재현하는 현장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러한 성막에 제사장을 세우시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그 직분을 위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1절을 보면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성막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합니다. 즉 성막에서 제사하고 제물 바치는 것을 섬김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교회에서 강조되는 섬김도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섬김은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할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행 17:25절의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는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함을 말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직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길 직분 또한 제사장입니다. 이것은 제사장 직분에 있지 않은 사람은 제아무리 자기의 정성과 열심을 보인다 해도 섬김이 아니라는 결론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섬김과 제사장 직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맡은 자신을 과시하는 결과만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는 것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교회에 목사를 위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 위임은 교회라는 종교 단체가 만든 하나의 형식이고 절차일 뿐이지 하나님이 세운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오히려 벧전 2장에서 신자를 가리켜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목사직에 해당되는 위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모든 신자에게 적용되는 위임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성막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막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밖에서 성막을 바라보면서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에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없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면 죽어야 하는 죄의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성막을 보면서 알아야 했던 것은 자신들은 죽어야 하는 죄의 존재라는 사실이고, 그러한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살려주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로부터 지켜주고 잘 되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기 위해 살려주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는 이유고 목적인 것입니다. 섬김을 위한 직분이고 위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을 섬김 받을 대상으로 보지 않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 섬김 받는 것에 마음을 둔다면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하는 모든 것은 위선이고 거짓일 뿐입니다. 이것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하나님 섬김에 교묘하게 자기 섬김이 함정으로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빙자하여 신앙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자기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죽음의 존재임을 증거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됨은 죽음의 존재가 죽지 않아도 될 가치 있는 인간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할 존재를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됨은 자기 자신이 목적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알고 그 이유로 인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고 있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자 됨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길 직분으로 위임받은 제사장이 그 직분으로 자기 유익을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곧 제사장의 실패가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제사장은 실패로 끝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은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없는 구원의 길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 직분을 세우신 하나님의 본래 뜻입니다. 인간은 자기 섬김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인간은 실패의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할 일은 제사장인 자신을 바라보거나 자신에게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존재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덕분에 산다는 것을 전달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에 감사하게 하는 것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또한 제물의 피로 용서함을 받아야 하는 죄의 존재일 뿐임을 드러내면서 제물의 희생에 담긴 은혜만 증거 해야 하는데 이 일에 실패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가 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4절에서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라는 말이나 10-14절에서 속죄제를 드리라는 내용들은 제사장 역이 불의한 죄의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본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것에 마음을 두면서 그 본래 자리를 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위임이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실패를 초래한 것입니다. 결국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가졌으되 그 직분을 위임하신 하나님의 뜻에는 무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를 가리켜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는 길로 인도 받지 않을 자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가리켜 신자라 하면서도 자신이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사장 직분이 자신이 아니라 직분을 위임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기 위함인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대해 신자가 제사장 직을 위임받은 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신자는 제사장 직을 위임 받은 기름부음 받은 자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로 사는 것이 제사장이라는 사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죽음의 존재인 우리를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살려주시는 이유일까요? 그것은 인생을 사명 없이 사는 것일 뿐입니다. 제사장으로 위임 받은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명으로 살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신자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사명이 있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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