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4 15:34

(79강) 부모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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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0:12http://onlycross.net/videos/exo/exo-20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설교>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먼저 계명을 주신 이유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명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계명을 주신 이유를 신자로서 바르게 살게 함과 동시에 복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계명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신자로 바르게 사는 것이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복이 주어진다는 것이 보편적인 사고라고 할 것인데 이것이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방향의 해석입니다.

 

 

계명을 주신 이유가 그대로 실천하여 지키라는 것일까요? 문자적으로 보면 얼마든지 실천이 가능한 것 같은데 그 의미 안으로 돌아가면 지킬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문자적 의미로 해석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세상이 말하는 인간의 도리, 윤리나 도덕과는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 하나님 백성의 독특성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주신 계명에서는 도무지 독특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상이 가르치는 윤리 도덕 그대로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살인, 간음, 도둑질,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 이웃의 집을 탐내는 모든 것이 세상 윤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계명을 문자적으로 해석했을 때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들이 다섯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를 인간에 대한 도덕법이라고 하면서 실천 할 것을 말합니다.

 

 

가나안 땅에도 도덕과 윤리, 그리고 그들 사회의 질서를 위한 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이나 살인하지 말라는 등의 계명이 가나안 땅에는 없는 특별한 법이 아닌 것입니다. 이점을 생각하지 않고 도덕법 운운하면서 지킬 것을 가르치다 보니 결국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같은 말을 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레 18:3-4절을 보면“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않을 자로 애굽에서 불러 내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가나안의 풍속과 규례를 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부모에 대한 것이나 살인, 도둑질을 금지하는 법이 없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을 떠나서라도 살인이나 도둑질에 대한 금지와 처벌법이 없으면 그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애굽이나 가나안 땅에도 살인과 도둑질을 금하는 법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면 부모 공경이나 살이,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등의 계명은 가나안 규례일까요 하나님의 규례일까요?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계명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가나안 땅에도 있는 규례라면 결국 가나안 땅의 규례를 행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문자적 해석을 했을 때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12절)는 다섯 번 째 계명에서 말하는 부모 공경을 흔히 부모를 받들어 모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효도를 가르치는 계명으로 해석되면서 어버이 날이면 단골로 등장하는 설교 본문이 되기도 합니다.

 

 

공경은 높인다는 뜻입니다. 영화롭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공경하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 공경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모가 되지만 날 때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자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으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결론은‘가능하지 않다’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부모는 공경 받을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경우에도 부모는 높임을 받아야 하고 영화롭게 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모 공경이 인간에게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가령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삭을 데리고 산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제로 이삭을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가 자신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항변하는 것이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반항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죽인다 해도 반항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부모 공경의 의미인데 이러한 부모 공경이 가능하다 할 수 없습니다.

 

 

자식이란 존재는 늘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힘들 때 도와줘야 하고 나를 사랑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위 능력 없는 부모를 싫어합니다. 자신이 힘들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부모에 대해서는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돈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지금은 부모의 입장에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은 이러한 자식의 실상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이 뭘까요?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든 것이 인간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광야에서 드러난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태도입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원하는가를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원하는가와 연결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못된 자식의 모습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실감할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공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부모로 인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인생만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크게 도움 되지 않는 부모에 대해서는 무시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경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고 존재하게 된 피조물로서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기만 바랍니다. 부모에게서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되면 효도하는 척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는 척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데만 관심 둡니다.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부모 공경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됩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하신 일은 십자가에서 죽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모공경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부모 공경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먼저 그리스도 안이 의미하는 것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율법은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완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이란 부모 공경이라는 계명이 완성된 세계를 뜻하는 것이고 계명의 실천 요구도 없는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신자에게 가장 복되고 귀한 것은 저주의 존재를 저주에서 건져 주시고 하늘의 영광된 생명에 속하게 하신 은혜와 사랑입니다. 이것을 두고 전부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 안에서 전부를 받았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면 현재의 삶의 형편과 무관하게 하나님은 높여야 하는 분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부모 공경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공경할 수도 없는 자신의 악함을 봐야 했습니다. 이것이 계명의 취지입니다. 자신의 악함을 보게 될 때 가나안 땅에서의 모든 것이 자신들의 의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다움이지만 이스라엘은 이 일에 실패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의 죽으심으로 참된 이스라엘이 있게 하시고 그들로 아버지 하나님을 공경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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