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3 15:17

(87강) 종과 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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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1:1-6

출 21:1-6http://onlycross.net/videos/exo/exo-21010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설교>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종의 제도를 인정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라는 말이 마치 종의 제도를 인정하시고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종의 제도를 인정하시느냐?’라는 의문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이시라면 너희 집에 종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하나님이 종의 제도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본문의 내용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종의 제도와 무관한 사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종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이 종의 제도를 인정하신다고 불평 한다면 하나님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교만일 뿐입니다.

 

 

본문이 종과 상전에 대한 내용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종과 상전의 관계는 없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는 존재하지만 고대사회처럼 고용인이 고용주의 재산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음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은 종과 상전의 관계에 하나님이 알게 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종과 상전의 관계를 풀어가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끄집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종의 제도를 인정하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시비는 마치 선물을 포장한 포장지가 좋다 나쁘다고 평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고 말씀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법규는 이미 20장에서 십계명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또 법규를 세우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십계명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살인하였을 때, 도둑질 하였을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합니까?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 뿐 살인하였을 때의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내용으로 하나님이 법규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계명 외에 법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어떤 언약관계에 있는가를 더 강력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절에서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본래 이스라엘에는 종과 상전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의 신분이었다가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분배 받은 것도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주어진 기업에 의해 많고 적음, 높고 낮음으로 차별될 수 없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고아와 과부가 있게 되면서 종으로 팔리는 경우가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종이 되었다면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에 의해 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 내부에 종이 있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은혜로 살아가는가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히브리 종을 사면 종신토록 상전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법에 의해서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을 사서 그 종의 상전이 되었다 해도 일곱째 해가 되면 자유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그가 하루나 이틀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하리니 그는 상전의 재산임이라는 말씀처럼 종은 상전의 재산입니다. 따라서 상전이 종을 자유하게 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재산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전에게 이것이 가능하려면 자기의 소유 재산보다 하나님의 법이 귀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을 무시하고 종을 계속 붙들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종이 있게 하심으로써 누구나 상전이 되고자 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소유를 가치 있게 여기는 죄의 속성이 드러나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상전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면 히브리 종을 사서 자기 소유가 된다 해도 그 기간은 6년뿐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즉 지금 자기의 종이고 재산이라 해도 7년이 되면 자신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 말씀과의 관계에 머무는 상전인 것입니다. 이것이 상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소유가 있든 내가 원한대로 나의 소유로 붙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허용하심에 의해 잠시 나의 소유로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상과 자신을 바르게 해석하는 신자입니다. 세상은 돈이나 지위를 높고 낮음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있다가도 없게 되고 없다가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상전이라 해도 종의 신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서 영원한 상전은 없는 것입니다.

 

 

종이 자유인이 되어 나갈 때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가면 되고 결혼한 상태에서 아내와 함께 종이 되었다면 아내와 함께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종이 된 후에 결혼하여 아내와 자식이 있는 경우에는 단신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상전이 준 아내와 태어난 자식은 계속 상전의 소유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법도 인간적인 면에서 생각하면 인정이 없습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종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가족을 버리고서라도 자유를 찾아 나가야 할까요? 아니면 자유를 버려야 할까요?

 

 

5,6절을 보면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종이 자유인이 될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는 사랑이 자유인이 될 기회조차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유인이 되어 홀로 자기를 위해서 자기 뜻대로 사는 것보다 종신토록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는 관계에서 머무는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 신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종이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은 종을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종을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종신토록 상전을 섬기는 종이 되었다는 의미로 송곳으로 귀를 뚫습니다. 따라서 송곳으로 귀가 뚫렸다는 것은 돈 때문에 팔린 종이 아니라 상전을 사랑해서 자발적으로 종이 되었다는 표시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에 의한 종과 상전의 관계가 된 것입니다.

 

 

문설주는 애굽에서 장자 재앙 때 양의 피를 뿌림으로 죽음에서 건짐 받은 사건을 뜻합니다. 이처럼 양의 피로 인해서 죽음에서 건짐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의 관계로 붙들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법에 의해서라면 애굽처럼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법이 아닌 사랑의 관계로 이스라엘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이스라엘다움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감사하는 것으로 증거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희생,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랑에 매이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나 홀로 나의 나 됨을 위해 살아가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사랑에 관계에 있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문설주 앞에서 송곳으로 귀가 뚫린 신자 됨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종의 흔적으로 남겨진 것입니다. 그 흔적을 복으로 받아들이는 그가 신자입니다.

 

 

피의 흔적이 있는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바라봅니다. 법의 관계에 있으면 종으로서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불안해 하지만 사랑의 관계에 있으면 모든 불의함을 덮어 주신 사랑에 취한 자로 존재하게 됩니다.

 

 

신자는 상전과 법이 아닌 사랑의 관계에 있음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열심히 법을 지키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사랑을 알고 사랑에 감사하는 신자 됨을 원하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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