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1 14:17

(68강) 여호와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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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7:8-16http://onlycross.net/videos/exo/exo-17081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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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설교>

사람이 진심으로 주의 은혜를 고백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을 때입니다. 심장 뛰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기 힘으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숨을 쉬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함으로써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문제도 동일합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은 구원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아는 것으로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만약 누구든 은혜와 무관하게 자신의 힘으로 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육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함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자기의 힘으로 되는 일이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면 그는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만약 육적인 사람이 천국에 갔다면 그는 무엇을 자랑할까요? 물론 육적인 사람이 천국에 가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육적인 사람이 왜 천국에 있을 수 없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천국은 은혜의 나라로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결단코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자신의 힘이 무능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깨닫도록 일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칩니다. 하나님이 머물라고 한 곳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런데 르비딤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또 다시 모세와 다투며 원망합니다. 왜 물도 없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자신들을 데려왔는지에 대한 다툼이고 원망입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움직였는데 왜 생존이 위협될 정도로 악한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약 이상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하나의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말씀대로 실천하면 복을 주셔서 평안하고 잘살게 하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실천했다’는 생각으로 자기 행동에 대한 보상적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러한 육신의 생각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모든 결과를 자신들의 힘과 공로의 결과물로 높일 것입니다.

 

 

약속의 땅은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적인 생각을 가진 자로 새롭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무능을 보고 실감할 수 있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아말렉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싸우게 하시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8절에 보면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고 말합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으로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60만이 넘는 이스라엘이 광야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크게 경계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영역을 이스라엘이 침범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말렉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세상의 시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승리합니다. 자신들이 이길 수 없는 적을 자신의 힘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기는 이상한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경험을 위해서 아말렉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치게 한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택하라는 모세의 말을 들은 여호수아가 어떤 사람을 택했을까요? 당연히 싸울 수 있는 장정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광야에서 거칠게 살아온 아말렉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장정이라 해도 싸움에 대비한 군사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오합지졸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아말렉과 싸우라고 한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이상한 싸움이 산 아래에서 펼쳐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싸움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싸움은 아닙니다. 즉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싸움의 승리를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감각이 둔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싸우든 승리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면 안됩니다. 그들의 싸움 실력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에 의해 이기고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믿음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도우심으로 승리했다’는 것이 믿음의 내용이 되어야 할까요?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속기 쉬운 함정입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흔히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이기게 하신다’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것을 세상에서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위에 있고 힘 있는 자 되는 것으로 멋대로 해석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이김을 주지 않습니다. 만약 타인보다 힘 있는 것을 이기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진정한 이김은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김은 없습니다. 회사에서 믿지 않는 자를 제치고 승진했다 해도 그것을 이김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승진을 해도 그 위에 또 힘 있는 자는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간섭하신다는 것으로 이미 이긴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형편이나 조건과 상관없이 이긴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내용으로 채워진 그 사람이 하나님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기심으로 획득한 전리품으로서의 신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승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고, 자신의 어떤 실패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로 인한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자리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싸움,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한 것입니다. 내가 싸워서 이기는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심으로 생명에 있게 된 경험입니다.

 

 

15,16절을 보면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으로 여호와는 나의 승리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승리라면 이스라엘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힘이나 무기를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힘과 무기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이미 이긴자이고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이스라엘에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요일 5:4-5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죄 아래 있으며 그 마지막은 심판입니다. 신자는 이 세상에서 건짐 받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마지막 때 누가 진정한 승리자로 드러날까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상에서 승리자로 존재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닛시가 되는 이김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을 이겨야 할 필요가 없고 이기지 않아도 됩니다. 여호와 닛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게 된 것으로 매일 기적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경험하고 확인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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