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76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출 19:1-6http://onlycross.net/videos/exo/exo-19010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설교>

인간이 신을 만드는 목적과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위해서입니다. 신은 초월적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 만든 신, 즉 우상에 대한 근본 생각입니다.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인도를 말합니다. 그런데도 실제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실감하기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길로 인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분명히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되어지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인도되는 과정에서도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약속의 땅이라는 목적은 정해져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도 이스라엘의 의사는 묻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광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의 소원이나 뜻과는 무관하다는 것부터 실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해 배워가야 합니다.

 

 

4절에 보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고 말합니다.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도하고자 하는 그곳이‘이곳으로 와라’는 명령에 따라 인간이 자기 발로 스스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의 힘으로는 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독수리 날개에 업혔다면 독수리가 날아가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독수리가 자신이 업은 자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는 독수리를 보낸 자의 뜻에 따라 날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업혀서 인도되는 곳이 하나님입니다. 조금 시시하지 않습니까?

 

 

독수리 날개에 업혀서 인도되는 것은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 실제로 독수리 날개에 업혀서 날아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있을 수 없는 신비한 기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러한 기적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적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신다는 것 또한 시시하게 생각합니다. 아마 스스로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것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달리 하나님에게로 인도되어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이야기일 뿐이고 지금의 자신과는 무관한 내용이라고 치부합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세상만 볼 뿐, 말씀에 의해서 진행되는 참된 현실에 대해서는 소경이고 앉은뱅이며 귀머리 상태임을 반증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종교 행위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거주할 때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겠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애굽에서의 모든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정성과 섬김을 보였다 해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신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이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5,6절을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신을 택해서 믿는다 해도 그것 때문에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하나님이 행하신 방식으로만 됩니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누가 하나님의 소유된 거룩한 백성이냐’는 것은 독수리 날개에 업혀서 구원된 경험이 있는가로 확인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업어서 하나님에게로 인도한 독수리 덕분에 애굽에서 빠져나와 살았다는 고백이 있는 그들이 제사장 나라의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신자가 누구인가?’하는 것은 절대 우리의 판단과 법칙과 틀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틀로 판단해봐야 결국 종교인을 신자로 착각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신자가 누구냐는 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신자 됨에 대해 결론내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아는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고 신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행위를 가지고 섣불리 스스로를 신자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너희가 내게 대하여”라는 말을 합니다. 세상이나 세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대하여 내가 누구인가를 알았을 때 그들에게서만 나오게 되는 고백이 있습니다.

 

 

시 51:3-4절을 보면 다윗이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야를 죽인 다윗이 주께만 범죄 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야에게는 범죄 하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물론 다윗이 우리야란 사람에게 범죄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범죄로 여긴다면 보상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께만 범죄 했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라는 말에는 이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나’를 생각하면 실력과 열심 등이 있으면 있는 것만 우월과 자랑으로 나오게 되지만 하나님에 대한 나를 생각하면 무엇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범죄 한 자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는 이스라엘 역시 범죄 한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을 죽음의 재앙인 장자 재앙에서 어린양의 피로 살리시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이스라엘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의미합니다. 해결될 수 없는 죄가 어린양의 피라는 은혜와 자비의 방식으로 해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피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담긴 백성에게서 나올 수 있는 고백은 하나님에 대해서 범죄 한 자라는 것이고, 이것이 지금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써 살았다는 고백으로 나와진다면 그가 신자인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는 제사장 한 사람의 희생으로 전부가 사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인 것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희생이 나를 살렸다는 것을 믿는 무리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나라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입니다.

 

 

우리는 독수리 날개에 업혀 있을 뿐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내 발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인도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그 날까지 독수리에게 업혀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나의 길에만 마음을 두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예수님의 피의 은혜에 감사하게 합니다. 나의 행위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하면서 예수님의 용서로 살았다는 기쁨으로 인해서 용서를 증거 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벧전 2: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예수의 피로 살리시고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신 이유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성경본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설교 원고는 없습니다 신윤식 2022.01.01 943
공지 암, 옵, 욘 성경강해 방으로 옮겼습니다. 신윤식 2011.02.28 7266
공지 이전 홈페이지 수요일설교 들어가기 은석교회 2010.01.01 40066
159 아 1:3 (2강) 사랑하는 이유 신윤식 2021.03.13 634
158 아 1:1-4 (1강) 솔로몬의 아가 신윤식 2021.03.06 899
157 출 40:17-21 (153강) 성막을 세우니라 신윤식 2020.12.31 623
156 출 40:9-13 (152강) 거룩하게 하라 신윤식 2020.10.24 1586
155 출 39:42-43 (151강) 명령하신 대로 1 신윤식 2020.10.17 1157
154 출 36:8-13 (150강) 성막을 만들다 신윤식 2020.10.10 28218
153 출 35:30-36:1 (149강) 지혜로운 자 신윤식 2020.10.03 794
152 출 35:20-29 (148강) 자원하여 드린 예물 신윤식 2020.09.26 708
151 출 35:1-3 (147강) 거룩한 날 신윤식 2020.09.19 1616
150 출 34:29-35 (146강) 얼굴의 광채 신윤식 2020.09.05 793
149 출 34:27-28 (145강) 여호와와 함께 신윤식 2020.08.29 641
148 출 34:25-28 (144강) 새끼와 어미 신윤식 2020.08.08 971
147 출 34:21-24 (143강) 쉴지니 신윤식 2020.08.01 592
146 출 34:18-20 (142강) 무교절의 의미 신윤식 2020.07.25 12475
145 출 34:11-17 (141강) 질투의 하나님 신윤식 2020.07.18 704
144 출 34:10 (140강) 언약을 세우나니 신윤식 2020.07.11 512
143 출 34:1-9 (139강) 다시 만든 돌판 신윤식 2020.07.04 5162
142 출 33:17-23 (138강) 내가 하리니 신윤식 2020.06.27 15244
141 출 33:12-16 (137강) 무엇으로 알리이까 신윤식 2020.06.20 793
140 출 33:7-11 (136강) 회막 신윤식 2020.06.13 5434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