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2 15:37

(74강)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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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0:1-2http://onlycross.net/videos/exo/exo-20010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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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설교>

하나님이 시내 산에 강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이유를 말씀하시고 강림하신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상황과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강림하신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그들 또한 이방인과 동일한 심판의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애굽에서의 장자 재앙으로 드러났습니다. 장자 재앙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만 죽음이 넘어감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기 때문에 죽음의 심판에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말해주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게서는 구원의 조건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과 깨달음으로 행동과 성품을 고친다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심판의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선악과를 먹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는 것으로 드러난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과 취지를 깨닫는다면 스스로 거룩과 의를 갖추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의도는 포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알게 된 증거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의를 추구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의를 행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자기의 의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악한 심성으로만 존재해 온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대문에 인간의 역사란 한마디로 말해서 죄의 역사고 심판의 역사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내 산 강림 후에 계명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십계명이라고 부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은 십계명이 신자로서 지키고 실천해야 할 내용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시내 산 강림을 전제한다면 실천을 위한 계명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내 산 강림 전 이틀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옷을 빨았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성결하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접근을 막으신 것은 인간은 어떤 행위로도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심판의 존재일 뿐임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지켜 행하면 거룩한 신자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주셨을까요?

 

 

앞으로 십계명에 대해 하나하나 말씀 드리겠지만 어느 하나도 우리가 지키고 행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자기 기준에서는 선하고 의를 행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겠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간은 저주에 속한 심판의 존재일 뿐이라는 것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십계명은 우리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 거룩해지거나 구원될 수 없음을 알게 합니다. 따라서 십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취지를 알고 십계명으로 인간의 한계를 실감했다면 구원의 가능성과 힘이 없는 무능한 자인 자신의 실상에 절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찾아오심과 불러주심 모든 것이 은혜와 자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1,2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전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까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라는 뜻일까요? 그런 뜻이라면 도덕과 윤리 수준의 계명을 주셨어야 합니다.

 

 

물론 부모 공경, 살인, 간음, 도둑질,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것들은 윤리도덕과 일치한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윤리도덕과 일치하지만 사실은 윤리도덕을 초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윤리도덕 수준의 계명이라면 십계명과 무관한 이방인들도 윤리도덕적인 자기 행실을 근거로 해서 구원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애굽 땅에 죽음의 심판이 덮쳤을 때 어린양의 피로 죽음에서 건지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어린양의 피의 효력아래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피로서 죽음에서 건짐 받았음을 알고 그 은혜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부르시고 세우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십계명은 이스라엘 또한 이방인과 다르지 않은 저주의 존재이며 그런 그들을 살리는 것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인한 피의 은혜임을 알게 하는 복음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취지를 왜곡하고 인간에게 초점을 둔다면 필히 십계명을 실천해야 하는 신자의 의무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 무지일 뿐입니다.

 

 

갈 3:10절을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의 행위를 의로운 것으로 규정하고 그 행위로 자신의 신자 됨을 증거 하고자 한다면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일을 항상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저주 아래 있는 자일뿐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렇게 우리를 저주의 자리로 끌어갑니다. 저주의 자리에서 우리의 행함이나 열심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어린양의 피의 은혜에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취지라는 것을 롬 3:20절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이상한 것은 왜 굳이 율법으로 죄를 깨달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살인이 죄고 도둑질이 죄라면 율법이 아니라도 아는 사실입니다. 도덕과 윤리로도 얼마든지 죄를 알 수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 5:13)고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죄가 무엇이기에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은 것입니까? 율법이 드러내는 죄와 세상이 말하는 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십계명을 받은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다른 것은 죄에 대한 인식입니다. 세상은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기는 그것이 이스라엘다움이며 신자다움이 됩니다.

 

 

계명이 드러내는 것은 거룩해질 수 없는 인간의 무능입니다. 따라서 죄는 인간에게 가능성을 두고 자신의 의와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 의해 어린양의 희생,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훼방되고 멸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입니다.

 

 

신자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의와 공로가 무너지고 잘라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의와 공로를 놓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말씀 앞에서 자신의 무능을 확인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지금의 신자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율법이 주어진 것이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면 죄를 깨닫는 것이 율법의 취지에 맞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나 같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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