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30 16:45

(77강) 여호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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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0:7http://onlycross.net/videos/exo/exo-20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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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설교>

보편적으로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는 세상에서 성공한 존재가 되기 위함입니다. 성공하고 싶지만 자기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기에 초월자로 인식하는 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 해도 그 뜻조차 인간을 위한 뜻으로 해석해 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항상 자기를 의식하고 삽니다. 바꾸어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을 의식한다 해도 그 또한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을 염두에 둔 의식이라는 점에서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모든 것은 신앙이 아닌 위선이고 거짓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위해서일까요?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자기를 의식하며 자기를 위해 사는 것 밖에 모르는 인간으로서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과 영광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세 번째의 계명으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7절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자기를 위해 살면서 하나님을 찾는 인간에 의해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 훼손된다는 것을 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광야의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고 그 땅에서도 여전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시각에서 신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동행을 이스라엘을 돕고 그들이 원하고 기대한 바를 이뤄주기 위함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헛된 기대고 환상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여정에서 이미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광야로 데려가신 여정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기대와 소원을 받아주지 않는 하나님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으로 자기 이름과 영광과 소원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다른 신, 우상을 섬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일이 따로 있음을 전제한다고 할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일을 염두에 두고 그 일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하나님이 뜻을 세우고 하고자 하시는 일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계명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한 유대인들은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아예 여호와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 또는 아도나이와 같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합니다. 율법을 기록할 때도 여호와란 이름을 쓰게 되면 붓을 씻었다고 하니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나 크게 오해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멋대로 해석하여 여호와 이름의 영광을 훼손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어떤 자리로 이끌어 가는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할 뿐입니다. 세 번째 계명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여호와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언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입술로 망령되게 부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고 실상이고 한계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도 자신을 향한 욕망을 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기 구원을 위해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것도 욕망이며 망령되게 부르는 것일까요?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찾고 예수를 믿는 이유를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욕망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자기 구원입니다. 즉 인간에게는 자기 구원이라는 욕망이 공통적으로 자리합니다. 인간의 본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구원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또한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이름은 애당초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저주의 존재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주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 인간의 실상을 잊지 말고 저주의 존재에게 당연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이 당연한 것일까요 심판이 당연한 것일까요?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이름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이름을 나타내셨을까요? 출 3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13절)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모세의 말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모세의 요청을 받아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이름으로 알려주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그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예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름을 명령되게 부르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모세가 애굽에 감으로써 되어진 모든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들입니다. 노역이 심해져서 고생을 한 것이나, 홍해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광야에서 먹고 마실 것 때문에 고생을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불평과 원망으로만 반응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속에 모세가 개입함으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자기를 위해서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찾았을 뿐이고. 원망과 불평은 그것이 무너진 것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은 저주의 존재라는 사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이름을 부를 때, 자신들이 저주의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이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저주의 존재를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 땅을 선물로 허락하신 은총을 감사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름을 명령되게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신자가 십자가에서 저주에 합당한 자기의 실상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 은총으로 감사하는 것이 망령되게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함께 하는 신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씀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백성으로 부르신 이유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분명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영광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 있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하나님을 불러 부탁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라고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그런 용도로 이용하는 것이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고 그에 대해 하나님은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의 일을 이루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뿐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시고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를 봐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여러분의 이름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이름은 다만 저주의 이름일 뿐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려지고 이제는 내 이름이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신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 이름이 아닌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사용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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