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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4:10-14http://onlycross.net/videos/exo/exo-1410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설교>

오늘 읽은 말씀에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14절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말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혹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우실 것이고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지는 않습니까?

 

 

사람은 어떤 문제가 있든 없든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는 가운데서 문제가 없으면 없는 가운데서 항상 자신을 위한 열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해석이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합니다. 도망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절망 하고 두려워하면서 결국 모세를 원망합니다. 모세가 자신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왔기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11-12절의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는 백성들의 말을 보십시오.

 

 

이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길을 가면서도 하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알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애굽이라는 강한 추격자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세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의 열심이 언약대로 이루실 것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자기를 위한 열심으로 삽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고는 말하지만 구원과는 별개로 자기의 열심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그 보상으로 복이 주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을 불안해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무 것도 하지 않아도 구원 받는다는 말보다는 구원 받은 자라면 열심을 다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복 받는 길이라는 말에 더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복음에서 어긋나는 것은 모세를 이스라엘에게 보내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일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의 이스라엘에게 보내셨을 때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애굽을 상대할 힘이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열심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구원자를 원하고 기다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모세를 보내신 것이고, 애굽을 재앙으로 치시고 종에서 벗어나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열심을 요구하시고 완전한 신앙생활을 기대하실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인가를 잘 아십니다. 그들의 길을 광야로 돌리시고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셔서 애굽의 추격을 받게 하신 것도 그들이 어떤 존재의 인간인지를 보게 하시는 작업입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자격도 조건도 없음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말에는 애굽에서의 구원이 애당초 이스라엘의 힘과는 무관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것입니다.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내가 애굽 군대를 물리치고 바다를 건너게 해주겠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봄으로써 구원은 너희의 힘이나 자격과 무관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은 유월절 규례를 세우신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유월절 규례를 세우신 것도 장자의 죽음을 넘어간 이스라엘의 구원이 그들의 공로나 힘과 무관하게 오직 어린양의 피로 되어진 것임을 잊지 말라는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은 구원 받은 자로서의 열심도 완벽한 신앙생활도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 애굽에서 종으로 있었을 때를 기억하면서 자신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된 그 이유, 토대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고 자신의 힘과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어린양의 피의 은혜를 높이는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구원이 예수님이 홀로 이루신 일이고 우리가 할 것은 없고, 무엇을 해도 의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구원 받는다’는 답을 즐기면 되는 것일까요?

 

 

다시 말하지만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의 토대가 자신들에게 있지 않음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라고 할 때도 ‘예수님이 다 하셨으니 나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행동방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토대가 주께 있음을 알고 자기 공로가 아닌 주님의 공로만 높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애굽 군대를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애굽과 전쟁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신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다면 그 싸움은 이긴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신다면 결과는 승리일 뿐이고 따라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 받는 이스라엘의 참된 현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참된 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단지 추격자인 애굽 군대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자신들의 현실로 생각했기에 두려움과 함께 모세를 원망한 것입니다.

 

 

신자에게 참된 현실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공로가 되어 우리를 죽음에서 구출하여 생명에 있게 하였다면 신자는 자신의 공로가 요구되지 않는 현실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못하기에 자신의 행함과 열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결국 피의 은혜를 훼방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가만히 있을지어다’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열심과 행동으로 되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이루신 구원으로 감사하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도 자신을 완벽한 신자로 만들지 못하고 또 하나님이 요구하신 바가 아니며 다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시선을 자신이 아니라 예수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게 하셔서 이루신 구원에만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하심만이 참된 공로이고 의로움이며 그 앞에서 인간의 어떤 행함도 내어놓을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자에게 어떤 행함이 있다 해도 그것을 근거로 해서 신앙을 말할 수 없게 되는 이것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행함을 근거로 해서 신앙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의 은혜와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를 말하되 십자가를 믿지 않는 것이 지금의 기독교가 처한 현실인 것입니다.

 

 

마 11:28절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쉬게 한다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하시겠다거나 짐을 대신 져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짐이 되었던 것들이 짐이 아닌 것이 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짐들이 모두 쓸데없는 염려였을 뿐임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생명으로 인도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참된 현실입니다. 설령 지금의 현실이 실패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참된 현실이 아닙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현실에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진짜 현실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열심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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