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7 17:13

(56강) 지팡이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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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4:15-20http://onlycross.net/videos/exo/exo-14152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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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17.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18.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19.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설교>

이스라엘이 홍해로 가로막힌 상황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들의 원망으로 인해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15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6절의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는 말씀대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이 건너고 애굽 군대는 물속에서 모두 죽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지팡이에 관심을 두기도 합니다. 지팡이가 하나님 권능의 상징이었고 하나님의 권능이 모세에게 함께 하여 바다가 갈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지팡이에 특별한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양을 치던 때에 가지고 다녔던 흔한 지팡이일 뿐입니다. 때문에 그 지팡이가 지금 우리 손에 있다 해도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처음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애굽으로 갈 것을 말씀하셨을 때 모세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기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고 모세가 ‘지팡이니이다’라고 답하자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 하시고 뱀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꼬리를 잡으라 해서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된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에 재앙이 내려질 때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게 해서 이가 되게 하셨고, 우방 재앙에서는 모세가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들자 하나님이 우박을 보내십니다. 또 메뚜기 재앙 때는 모세가 애굽 땅 위에 지팡이를 들자 하나님이 동풍을 일으켜 메뚜기를 불러들이시고 광야에서는 지팡이로 반석을 치자 물이 나오게 하신 일도 있습니다.

 

 

이처럼 모세의 지팡이로 한 일이 많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지팡이가 마법의 지팡이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평범한 지팡이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지팡이를 통해서 모세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여기서 신자가 주지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일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죽음에 있는 자를 죽음에서 건지신 능력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은 죽음에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 있는 자라야 죽음에서 건지진 능력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도구로 부르셨다면 그들을 죽음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셔서 자신이 죽음의 존재임을 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17,18절에 보면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애굽 군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만약 애굽 군대가 바다로 들어가지 않고 이스라엘 쫓기를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갔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바다가 막혀서 길을 가지 못한 이스라엘을 바다를 갈라지게 해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 다시 말해서 기적으로 이스라엘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어려움을 도와주신 하나님으로 부각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다에 애굽 군대가 들어있음으로써 ‘하나님은 왜 애굽 군대는 죽이시고 이스라엘은 살리셨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홍해 앞에서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스라엘 역시 구원받을 만한 존재가 아님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구별 때문입니다.

 

 

19,20절을 보면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자 이스라엘 앞에 가던 구름 기둥이 뒤로 옮겨 감으로써 애굽 군대 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스라엘 쪽에는 불기둥이 있어서 밝고 애굽이 이스라엘 쪽으로 가까이하지 못했다는 이 상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별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애굽은 흑암으로 이스라엘은 빛으로 구별하심으로써 흑암으로 구분된 자의 운명이 죽음인 것을 애굽 군대의 죽음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기준이 되어 이스라엘과 애굽이 구분되었을까요? 사람 됨으로는 이스라엘이 구분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모세를 원망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구별 근거는 어린양의 피에 있습니다. 죽음의 재앙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그 피로 인해 죽음의 재앙에서 구출된 사람이 홍해 앞에 있는 이스라엘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어린양의 피의 능력 아래 있는 것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죽음의 바다를 건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애굽도 죄의 존재일 뿐입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그들의 모든 죄를 덮는 어린양의 피의 은혜 아래 있고 애굽은 죄가 고스란히 드러난 처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서는 어린양의 피를 보시는 것이고 애굽에게서는 죄를 보심으로 한쪽은 죽음에서 건짐 받고 다른 한쪽은 죽음에 버려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라는 언약으로 일하시고 언약 안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는 것이고 이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신자는 ‘하나님은 언약으로 일하시고 하나님 홀로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면 죽음의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죽음의 존재를 죽음에서 구출하는 능력이 되는 그것이 가장 가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죽음의 존재에게는 가장 복되고 가치 있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죽음의 세계에서 죽음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서 십자가의 피는 무시되고 짓밟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누가 뭐래도 십자가의 피에 모든 가치를 두고 피의 은혜 아래 있는 것을 하나님의 크신 복으로 간주하는 그들이 언약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십자가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으로 이미 세상을 이긴 자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를 믿는 신자의 위대함이고 가치입니다.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이 그리스도에 속하여 피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가치 있는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계속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이 또한 우리의 형편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구별된 사람이고 죄가 용서됨으로 거룩한 자로 여김 받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잘라내지 못합니다. 세상이 심판받는다 하면서도 세상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은 티끌만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말뚝에 박혀서 꼼짝할 수 없는 처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를 덮음으로써 죽음의 말뚝이 제거되고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음을 안다면 결국 죄로 인한 애통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한데, 그런데도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를 덮고 있다는 것 때문에 생명을 얻게 되는 모든 내막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피가 가장 가치 있음을 아는 길로 인도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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