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3 16:55

(57강) 바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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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4:21-31http://onlycross.net/videos/exo/exo-14213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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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1.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23.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2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30.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31.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설교>

하나님의 일하심은 단지 인간을 지켜주고 보호하시는 것으로 일관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죽음과 생명이라는 진짜 현실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집중됩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후 세상의 현실로 자리하게 된 것이 죽음이지만 세상은 이를 무시하고 마치 죽음과 상관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세상은 생명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무관심으로 반응합니다. 그리고 대신 인간이 추구하는 바를 이뤄주는 하나님을 찾지만 그것이 바로 죽음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하나님은 생명에 속한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세워서 생명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가를 보이시며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의 홍해 사건 또한 생명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보게 합니다.

 

 

바다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로 육지로 걸어가고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온 애굽 군대는 다시 합쳐진 바다에서 몰살당하고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홍해 사건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별을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는 이스라엘을 도와주고 위기에서 구출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속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을 돕고 위기에서 구출해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면 애초에 이스라엘의 길을 홍해 쪽으로 돌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유리한 길은 광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홍해 사건을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하고 싶어 합니다. 생명과 죽음의 현실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라는 생소한 말보다는 자기 백성을 지켜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을 보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바다에서 이스라엘은 살고 애굽 군대는 죽었지만, 정상적인 것은 애굽 군대의 죽음입니다. 바다에서는 누구도 살아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너 살아나온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 되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곧 비정상적인 일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당연한 구원이 아니라 있을 수 없는 구원이고 가능하지 않은 구원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구원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세상에는 없는 기쁨과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홍해 사건에 담긴 내용이기에 단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져주신 것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다에서 구원받았고 애굽 군대는 바다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것은 바다에서는 죽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죽음의 세계가 바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죽음의 세계에서 구원받은 것이 됩니다.

 

 

27,28절에서“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바다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다의 힘은 무엇일까요? 미 7:19절에 보면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는 말을 합니다.

 

 

죄는 죽음을 뜻합니다. 죄를 깊은 바다에 던졌다는 것은 깊은 바다가 곧 죄의 세계, 죽음의 세계라는 뜻이고 따라서 바다에 갇힌 자는 누구도 살아나올 수 없는 죽음의 존재인 것이고 바다의 힘은 곧 죽음의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다를 갈라서 좌우에 벽이 생기게 하신 것은 바다의 힘을 하나님이 다스린 결과입니다. 바다의 힘을 하나님이 다스림으로 이스라엘이 바다에서 죽지 않고 걸어 나온 것이고 애굽 군대는 회복된 바다의 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에 작정 된 서로 다른 운명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종으로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애굽과는 다른 길로 인도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작정 된 운명이 어떤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고 애굽을 그리워하며 모세를 원망했을 뿐입니다. 자신들에게 작정 된 길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 길에서 누리게 되는 것이 있음도 알지 못했기에 지금의 현재에 붙들려서 현재의 삶에 필요하고 좋은 것만 추구한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었다고 말합니다. 육지로 걸었다는 것은 길을 걸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바다를 갈라서 길이 생기게 하셨고 그 길을 이스라엘이 걷게 하신 것입니다. 바닷속 길이 이스라엘에는 죽음에서 걸어 나온 생명이 길이 된 것입니다.

 

 

본래 바다에는 길이 없습니다. 바다에 갇혔다면 그 운명은 죽음뿐입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것을 바다에 이스라엘과 애굽 군대를 집어넣으심으로써 하나님이 택하고 부르신 이스라엘이라 해도 애굽과 다를 바 없이 죄 아래 있는 죽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그 본질은 애굽과 같이 죽음의 존재인데 이스라엘에게는 바다에 길이 있게 하시고 그 길을 걸어서 죽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혜택을 주셨습니다. 반면에 애굽은 인간은 본질 그대로 죽음에 갇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죽음의 세계인 바다에 길이 있게 하신 것처럼 죽음의 세계인 세상에 길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혜택은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신자는 그 혜택으로 예수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다에 길이 있게 하지 않았으면 이스라엘에 구원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다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그들의 사람됨과는 무관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 역시 애굽과 다르지 않은 죄의 존재였을 뿐입니다. 이 말은 바다에서의 구원이 이스라엘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 사건에서 배우게 되는 구원의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다를 걸어서 나왔다 해도 그들의 인간 됨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나온 후 구원의 노래를 불렀지만, 또다시 육신의 괴로운 상황에 봉착되자 원망합니다. 이스라엘은 죽음의 바다에서 생명을 경험한 것이고 그 생명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진 혜택인 것을 배울 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롬 5: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합니다.

 

 

죄는 모든 사람을 사망으로 끌어갑니다. 이것이 죄의 힘이며 애굽 군대를 붙들었던 바다의 힘입니다. 하지만 바다의 힘도 이스라엘을 붙들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린양의 피로 죄가 가려진 은혜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롬 5:17절에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믿음 안에서 반드시 자신이 죽은 자임을 봐야 합니다. 자신을 죽은 자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 자신을 생명에 있게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30절에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고 말합니다.

 

 

바다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눈에 보인 것은 애굽 사람의 시체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비참함이 이스라엘 자신들의 현실이었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럴 때 바다의 길을 걸어서 나오게 되고 약속의 땅에 존재하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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