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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6:8-12http://onlycross.net/videos/exo/exo-16081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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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설교>

애굽을 떠날 때 미래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대는 참으로 컸을 것입니다. 애굽보다 힘든 환경이 기다린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을 믿고 모세를 따라 나왔기 때문에 조금만 고생하면 하나님이 주신 땅에 들어가서 잘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먹을 것이 없는 척박한 환경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무너지고 현재의 고통으로 인해서 마음이 상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원망을 하나님도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원망을 불신앙의 행위로 인식합니다. 때문에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징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원망을 했는데도 징계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죄를 묵인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을 들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떡으로 배부르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각과 예상을 벗어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래서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기대와 예상에 맞게 일하시는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일의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는데 하나님의 일하심이 그런 우리의 기대와 예상에 맞는다면 결국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인간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고 말합니다.

 

 

원망을 들으셨으면서도 오히려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겠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망이 고기와 떡을 먹게 된 이유라는 것입니까? 그러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원망하자’라는 말도 가능할까요? 물론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게 하고 떡으로 배부르게 하는 것으로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인 줄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시는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개의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아는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이스라엘도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조상 대대로 믿어온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는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시려고 고기와 떡을 주셨다는 것은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시가를 알지 못한 자로 여기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를 바라보면서 여호와의 영광을 경험합니다. 광야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40년을 떠돌면서 고생을 해야 할 장소입니다. 40년을 고생하면서 원망과 불평으로 넘칠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광야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것은 광야의 모든 일정이 여호와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홍해로 이끄시고 40년 동안 광야에 있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고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이 한 것은 원망과 불평이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고기를 먹게 하시고 아침마다 떡으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이것으로 이스라엘이 배워야 하는 것은 자신들은 고기와 떡을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날마다 주어진 만나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는 것이 여호와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우는 일에 굳이 광야 40년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광야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 받지 못할 자에게 베풀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자가 은혜를 안다는 것은 자신을 은혜 받지 못할 자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광야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은 은혜 받지 못할 자라는 것이 드러나고 배우게 되는 현장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에서 하나님이 살게 하신 것만큼 드러나는 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한 실상을 보게 되면서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경험하고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으신 것처럼 우리의 원망도 들으십니다. 매일 매일의 불만과 불평을 빠짐없이 들으시고 알고 계십니다. 비록 교회로 모여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양식을 주시면서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붙들어 놓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를 천국보내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잘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존재하며,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 은혜를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셔서 은혜 받을 수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로 감사하는 신자로 세워 가시기 위함입니다.

 

 

고전 15:9절에 보면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스스로를 사도로 칭함 받을 수도 없는 존재로 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자가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며 죽이기까지 했었고 심지어 스데반도 죽였는데 어떻게 떳떳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을 사도 중의 가장 작은 자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한 것이 바울의 일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수시로 행하고 있는 악행입니다.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사람을 지칭합니다. 여러분이 함께 하고 있는 지체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지체에 대한 미움이 있고 시기가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교회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자로 부름 받은 것은 신자로 칭함 받을 가치도 없는 자에게 베풀어진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한없는 감사가 되고 현재의 형편과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이 살게 하심을 믿는 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신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믿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소망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심판이 마당한 자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은총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믿음의 길이고 방향입니다. 우리에게 불만이 있게 하는 고통과 어려움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 은혜를 알아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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