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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2:15-20http://onlycross.net/videos/exo/exo-12152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5.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16.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

17.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18.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19.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20.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설교>

애굽에 장자 재앙이 실행되기 전에 유월절 규례를 세우신 하나님은 이어서 무교절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유월절은 유대 달력으로 1월(니산월) 14일 저녁에 지켜지는 절기이고 무교절은 15일부터 칠일동안 지켜지는 절기여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각각 분리된 절기가 아니라 하나의 절기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눅 22:1절에서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월절의 제물은 흠 없는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뒤에 고기와 머리, 다리, 내장은 불에 구워 먹는 것이 유월절 규례인데 특이한 것은 날 것으로나 물에 삶아서는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 8:31절의 제사장 위임식 규례에서는 회막 문에서 고기를 삶아 먹으라고 합니다.

 

 

또한 대하 35:13절을 보면 “이에 규례대로 유월절 양을 불에 굽고 그 나머지 성물은 솥과 가마와 냄비에 삶아 모든 백성들에게 속히 분배하고”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날 것으로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모든 제물에 통용되는 것이지만 물에 삶아 먹지 말라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에 해당되는 규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날 것으로 먹지 마라는 것은 피 째 먹지 말라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창 9:3절을 보면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산 동물을 먹을 것을 허용하시면서 오직 피만은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고기를 먹되 물에 삶아 먹지 말라는 규례를 유월절에 남겨 놓으심으로써 이스라엘이 유월절과 함께 무교절의 참된 의미를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 말은 유월절과 무교절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 절기들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이 아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왜 피를 생명으로 말씀하셨을까요? 생명은 죽음에서 건짐 받은 것을 뜻합니다. 즉 죽음에 처한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 흠 없는 제물의 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노아는 그것을 알았기에 정결한 제물로 제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또한 장자 죽음이라는 재앙에서 건짐 받은 것이 어린양의 희생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유월절 규례를 통하여 어린양의 피의 희생을 이스라엘에 남겨 놓고자 하신 것이 유월절의 의미가 되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날 것으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물에서 구원 받은 노아와는 다르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 후에 무지개 언약을 세우십니다.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는 언약입니다. 그 증거로 무지개를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홍수 후의 세상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존재합니다. 홍수전이나 후나 사람은 동일하게 악하지만 언약에 의해서 악함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에 다시는 심판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계 21:8절을 보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때가 있음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기준이며 그 기준이 바로 언약의 완성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는 바로 피를 믿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사전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은 이스라엘을 도구로 하여 드러날 심판의 기준이 사람이 악함이 아니라 피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의 규례는 무교절로 이어집니다.

 

 

15절에 보면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합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은 딱딱하고 맛없는 떡을 말하는데 무교병을 먹는 것이 무교절의 핵심입니다. 만약 무교절 기간에 유교병, 즉 누룩을 넣은 떡을 먹으면 이스라엘에게 끊어진다고 경고하실 만큼 무교절의 의미는 무교병을 먹는 것에 있고, 그것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떤 존재로 부르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19절에서는 무교절의 기간에는 아예 집에서 누룩이 발견되지 않게 하라고 하심으로 누룩과는 철저히 단절되는 것이 무교절임을 강조합니다. 유대인은 지금도 이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무교절로 정한 날에 누룩을 넣지 않는 음식을 먹고 먹지 않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규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교병도 무교병도 음식입니다. 비록 맛없는 무교병이라 할지라도 먹지 않으면 사람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유교병을 먹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먹기 때문에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무교병에는 인간이 원하는 인간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교절이라는 이레 동안에 무교병을 먹는다면 그것은 이레라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애굽에서의 구원이 이스라엘이 원한 것도 이스라엘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교절에 담긴 의미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생각하면 우리가 유월절과 무교절에서 잊지 않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출애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위한 십자가, 우리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한 구원일까요?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써 증거 되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언약 아래 있게 하시고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을 죽음이 넘어가게 하셔셔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12절에 보면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의 모든 신은 세상의 신을 말하는 것인데 세상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인간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신입니다. 그런데 무교절에 유교병을 먹는 것이 곧 하나님을 인간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신으로 간주하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곧 애굽과 다르지 않는 것이기에 이스라엘로 간주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통을 보지 않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그들을 이스라엘로 간주하실 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됨의 특징은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으로 신자와 신자 아닌 자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배경으로 하여 현대 기독교를 바라보면 참으로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통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자기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애굽의 사상으로 가득할 뿐입니다. 십자가를 안다고 하지만 십자가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십자가는 무교절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는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무교병과도 같습니다. 인간이 원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로는 자기 구원만 챙기고 여전히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지금의 기독교에서 드러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예수님이 말씀한 그대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으로 가득한 종교의 모습인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16절에 보면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무교절의 시작과 마침은 성회입니다. 성회는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시작도 마침도 온전히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한 기쁨과 찬송이 되는 것이 성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곧 기쁨이 되고 찬송이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무교절은 예수님이시고 십자가가 기쁨과 찬송이 되는 것이 무교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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