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8 17:38

(48강) 열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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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2:29-36http://onlycross.net/videos/exo/exo-12293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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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9.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33.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설교>

애굽 땅의 처음 난 것을 치시는 마지막 열째 재앙이 시작됩니다. 29절의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라는 말씀을 보면 열째 재앙은 밤중에 일어난 사건이고 그 범위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 그리고 가축의 처음 난 것으로까지 모두 확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치시는 재앙으로 인해서 애굽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고 다만 어린양의 피를 뿌린 집만 재앙이 넘어갔을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재앙이 있는 심판의 세계에서는 다만 피가 구별의 기준으로 자리했던 것입니다. 바로와 옥에 갇힌 사람은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최하의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세상적 구별도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무의미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만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피를 뿌린 집은 피를 믿었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 받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당연한 말이 아니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주의할 것은 먼저 믿음의 출처, 즉 믿음의 시작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출처가 인간인가 하나님인가? 라고 물으면 누구든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선물로 주어져서 예수를 믿는 믿음이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믿음으로 인한 구원의 세계는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어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믿어서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으로도 가능한 일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믿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의 신념을 믿음으로 착각할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믿음이 행함이 되는 것입니다.

 

 

열째 재앙은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로 구별됩니다. 그리고 그 구별의 중심에는 피가 있습니다. 죽은 자는 피 때문에 죽은 것이고 산 자는 피 때문에 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역시 죽은 자와 신자로 구별되며 그 역시 피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고 예수님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를 보실 뿐인데 피가 없어서 죽는다면 결국 피 때문에 죽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되어질 실상이며 이것을 애굽이 열째 재앙에서 엿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예수 때문에 사는 것일까요? 만약 예수 믿는 것을 자신의 행함으로 이해한다면 그는 예수의 피 밖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시 피 때문에 죽는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믿음이 행함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참된 믿음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게 하셨음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밤중에 애굽의 장자를 치신 것일까요? 애굽을 치시는 것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밤중이 아니라 낮에 치실 수도 있고, 장자가 아니라 차자, 그것이 아니면 애굽 사람의 모든 자식을 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열째 재앙은 단지 애굽을 심판하기 위한 것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되심을 이스라엘에게 증거 하기 위해 애굽을 심판하신 것이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가 되심을 믿으며 되어진 모든 일들에서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보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애굽이 이스라엘을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앞에도 죽음 뒤에도 죽음에 갇힌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라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것이 죽음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내밀게 해서 홍해가 갈라지게 하고 이스라엘은 그 길을 건너 죽음에서 구출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길이 되심으로 되어진 구원입니다. 죽음에 갇힌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길이 되신 것입니다.

 

 

재앙에서의 구원은 밤중에 이루어집니다. 마 27:45절을 보면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어둠, 즉 밤중에 죽으십니다. 구원이 밤중에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어둠이라는 것은 우리 또한 어둠의 세력에 붙들린 자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둠의 세력에 붙들려서 선을 행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밤중에 이루어진 예수님의 구원은 구원될 수 없는 자에게 주어진 은혜이고, 구원될 힘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진 능력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는 자연히 자신의 구원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참여하게 된 내용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열째 재앙은 애굽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을 백성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는 삶을 사십니까? 오히려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믿음 없음을 묻지 않으시고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35,36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고 말합니다.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이 애굽 사람에게서 은금 패물과 의복을 받아 나옵니다. 은금 패물과 의복조차도 그들의 몫이 아니었던 것을 하나님으로 인해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로 밖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들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초라해서 은혜와 사랑이 실감되지 않는다면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만 좇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우리의 초라함은 세상 것이 없거나 적은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받았으면서도 받은 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과 동일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피 안에 붙들어 놓기 위해 일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 은혜를 고백하는 백성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과 원망이 있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일임을 알게 됩니다. 불평과 원망 속에서 구원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신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뻔한 것이 아니고 다 아는 것도 아니며 지루한 것도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것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으로 가능한 은혜의 세계입니다.

 

 

30절에 보면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도 당했어야 할 상황입니다. 하지만 피가 있는 그 집에는 죽음으로 인한 부르짖음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이 애굽과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 믿음에는 내가 잘해서 내 힘으로 되어진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은혜로만 남겨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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