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6 16:38

(50강) 유월절 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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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2:43-51http://onlycross.net/videos/exo/exo-12435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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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3.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44.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5.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

46.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47.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48.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49.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50.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으며

51.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설교>

본문에서 말하는 유월절에는 지켜야 할 규례가 있습니다. 이방 사람은 유월절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어있고 고기는 한 집에서 먹되 집 밖으로 조금도 내어서는 안 되고 뼈도 꺾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방 사람이라 할지라도 함께 먹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할례입니다. 타국인이라 해도 할례를 받으면 본토인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월절 규례가 오늘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당연히 유월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내용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우리에게도 본문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졌다면 유월절 규례에 관한 내용은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유월절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2절을 보면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밤은 어둠의 세력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여호와의 밤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가 개입하여 주관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밤에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은 단지 출애굽 시간을 의미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장악하고 있던 어둠의 세력을 이기시고 구출하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의한 구원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라는 말에만 동의할 뿐이지 그 말에 행함에 대한 인간의 무능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은 예수님이 모든 일을 이루시고 완성하신 세계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은 신자는 예수님이 이루시고 완성하신 일을 구경하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이 이루신 일, 즉 십자가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감격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취지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셨으니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되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께로 불러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시고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가 보답할 수 있을 정도로 가치 없는 것입니까? 무엇을 해야 보답이 되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에 의해서 훼방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셨을 때가 유월절 저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내 몸이라고 하셨고, 잔을 주시면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지금의 교회에 성찬식이란 의식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비록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지만 그들의 실상은 어둠의 세력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즉 저주에 속한 사망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것으로 어둠으로부터 구원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밤에 인도하여 내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밤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능력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신 완성의 세계이고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모든 일을 완성하셨음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세계는 인간의 일이 자랑 되지 못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만이 자랑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4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유월절 규례는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 사람을 구별합니다. 이방 사람은 그의 삶이나 인품이나 행실의 여부를 떠나서 이방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유월절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이방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48절을 보면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타국인이라 할지라도 할례를 받으면 본토인과 같이 된다고 합니다. 타국인이냐 이스라엘 사람이냐의 문제가 출생 혈통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할례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을 초월하여 할례가 기준이 되어서 누구든 할례를 받으면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언약의 표징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 언약을 받을 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 즉 열국의 아비로 바꾸십니다. 많은 자손의 아비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약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이고 따라서 할례를 행하는 것은 아브라함 자손인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해 존재하게 됨을 믿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것 역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것임을 믿는 것이 할례이기 때문에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모든 가능성과 힘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자가 곧 이스라엘이라는 것이 할례의 뜻입니다.

 

 

그래서 할례받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 방식인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뜻이고 그러한 인간은 비록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도 죽음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방인처럼 취급되어서 유월절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할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죽음의 존재인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고 그들을 이스라엘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은 그리스도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누구든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가 곧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과 연결되는 것은 유월절에는 죄 없는 어린양의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죽음의 재앙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히브리 민족도 애굽과 동일한 속성의 인간이기에 죽음의 존재들이었지만 어린양이 그들의 죽음을 대신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가 그들을 죽음에서 넘어가게 하였기 때문에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무엇 때문에 살았는가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한 규례인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가 아니면 죽음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다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월절 정신과 의미는 오늘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흘리신 피가 아니면 죽음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 자기의 실상을 기억하며 나의 힘이 아닌 은혜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 참된 현실임을 믿는 것이 할례받은 자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46절을 보면 뼈를 꺾지 말라고 합니다. 이 역시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요 19장에 보면 군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강도들의 다리는 꺾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꺾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두고 성경이 응했다고 말합니다.

 

 

뼈를 꺾은 것은 완전한 죽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은 것은 뼈를 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죽었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예수님이 완전히 죽으셨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뼈가 꺾여 죽은 자가 뼈가 꺾이지 않은 의인의 죽음에 의해 구원됨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시 34:19~20절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생명이라는 혜택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기쁨이 되고 감사와 감격이 된다면 그것은 자신을 죽은 자로 보기 때문일 것이고,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안겨준 생명이 가장 귀한 것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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