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0 15:50

(52강)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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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3:11-16http://onlycross.net/videos/exo/exo-13111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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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1.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14.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설교>

결과가 좋아야 할까요. 과정이 좋아야 할까요? 과정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도 좋은 것이 아니고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도 좋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과정이 나빠도 결과는 좋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과정으로 결과를 예측하거나 결과로 과정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결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분위기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 또한 좋았던 것으로 포장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인정되는 분위기에서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복음은 애당초 부흥이라는 결과를 약속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반응에는 관심 두지 않고 다만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용서의 세계로 인도할 뿐입니다. 그래서 과정이 세상으로부터 배척 받고 무시 받는 것이라 해도 괜찮은 것이 복음의 세계입니다. 결국 복음이 생명이라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에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면 남은 것은 그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처음 난 것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14,15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이스라엘에게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이 애굽의 처음 난 것을 치실 때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집은 죽음의 재앙이 넘어가게 하시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일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어떤 과정으로 인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담고 있는 것이 ‘처음 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얻게 되었을 때 처음 난 것을 여호와께 돌리라고 하신 취지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된 과정을 잊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결과에 붙들려서 과정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 현재의 결과가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둠으로써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간과하게 되고 과정을 간과함으로써 과정에 담긴 하나님의 열심과 은혜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모든 과정에는 하나님의 일하심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 즉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이스라엘임을 증거하는 것이고, 처음 난 것을 여호와께 돌리라는 것은 자신의 모든 힘과 노력이 부인되는 자로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고 말합니다.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로 말씀하는 것은 어린양으로 처음 난 것을 대신하여 여호와께 제사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제사가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기호가 되고 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연히 십자가입니다.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의 대속으로 우리가 살았음을 증거 하는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생생히 살아있는 표로 존재합니다. 때문에 신자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로 우리를 대속하시고 구출하신 은혜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신자에게는 생명의 과정으로 굳건히 자리하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라는 말은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출 13:9절에서도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는 것은 율법을 낭독하라는 뜻이 아니라 율법으로 인해서 자기의 죄를 알게 되고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죄를 보게 하는 것이 율법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자 할수록 죄를 보게 되는 것이고 죄를 고백하게 되면서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으로 살았음을 감사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들이 의미하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의미는 결과만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기독교의 잘못이 무엇인지는 명확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정이 아닌 결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자 하는 모든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잘 사는 것을 복 받은 것으로 규정하고 복 받은 것은 신앙이 좋은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연히 잘 사는 것이 신앙 좋은 결과로 여겨지는 것이 신앙이 종교화된 현대의 실상인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신자에게 신앙의 표는 십자가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행한 그 어떤 것도 신앙의 표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현대 교회에서 신앙의 표로 간주하고 강조하는 것은 주일성수, 기도, 십일조, 헌신 등과 같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고,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에 말만 있고 능력은 없는 결과만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말하되 십자가로 인해서 자신이 부인되는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대속의 피를 손에 기호로 삼는 것은 손에 실제로 무슨 표시를 하라는 것보다는 손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어린양의 피에 의해 부인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간의 표로 삼아라는 것도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할 뿐임을 알고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생명의 사건에 감사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표는 우리의 철저한 자기 부인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계 9:4절을 보면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고 말합니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말씀이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집만 해하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했다면 그는 자기 생각으로 살아감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마에 인침을 받은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인해서 기존의 생각이 아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자랑하고 높이는 것이며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본분임을 아는 것이 성령 받은 신자의 새로운 생각인 것입니다.

 

 

성령 받은 신자는 죽음에 속하고 저주의 자식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생명에 속한 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모든 과정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천국 간다는 결과보다는 천국에 가게 된 과정을 신비한 기적으로 여기면서 불가능함에서 가능함이 있게 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찬송합니다. 이것이 신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라는 표를 남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죄가 용서되고 구원 받는 결과만 생각하지 마시고 죄가 용서되고 구원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만 여러분에게 남겨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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