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3 14:10

(61강) 과거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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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6:1-3http://onlycross.net/videos/exo/exo-16010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설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할 것임을 말하게 합니다. 모세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이제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서 고난이 없는 평안한 삶을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그들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고 모세를 원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경험하고 구원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광야라는 거친 생활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사람은 자기 미래에 대해 기대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다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있겠지만 홍해라는 기적을 경험한 후라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평탄한 삶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전히 죽음의 위기를 맞보는 길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1월 15일에 떠났습니다(민 33:3). 그리고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가 애굽을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면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 만에 신 광야에 도착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도 다 먹었을 것인데 광야는 양식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생존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넌 기적의 사건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신다는 참된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게 된 현실만 보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됩니다.

 

 

이 상황을 2,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했다면 그 땅으로 들어가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중해 바닷가를 따라 올라가면 되는 편한 길로 인도하시면 됩니다. 블레셋이라는 힘센 민족이 가로 막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처리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나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기대와 예상을 뒤엎고 광야로 데려가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자신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되고 심지어 애굽에서 살던 때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애굽보다는 더 좋은 곳,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간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야로 들어가게 되면서 원망과 함께 애굽이라는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가 좋았다’는 심정을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이스라엘이 문제일까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문제라는 것이 여러분의 생각이라면 여러분이 살아가는 현재의 모든 상황을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현재에 대해서도 원망하고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이 나의 기대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나는 세상을 힘들게 살기 싫고 하나님은 나를 힘들지 않는 길로 데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시는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상황에 부딪히면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과거의 애굽에서 살았을 때를 회상하며 차라리 그 때 여호와의 손에 죽었으면 좋았다는 것은 애굽을 애굽으로 보지 않고 다만 고기가 있고 떡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으로만 보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진 곳입니다. 그것은 애굽은 저주의 세상일 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재앙을 목격하고 경험했으면서도 애굽을 재앙이 있는 세상으로 보지 않고 고기와 떡이 있는 곳으로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만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어리석음이기도 하다는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세상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인 저주의 세상으로 보지 않고 행복을 누리고 싶은 곳으로 바라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존에 실용적이지 못한 성경의 말에 대해서는 답답해하며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폭로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거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대적하며 이방인과 다를 바 없이 원수로 행동하는 이스라엘의 본성을 폭로시키면서 하나님이 버리시고 죽여도 할 말 없는 존재임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살아있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에서 살아가는 자기 인생보다는 자신들이 그 땅에서 살게 된 것 자체를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안되는 놀라운 기적으로 여기면서 그 은총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광야를 경험하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광야의 경험이 없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고생이라는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현실에서든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는 것이 자신의 본성이라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도록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힘들지 않은 인생에 목적을 두고 하나님을 찾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과연 하나님을 아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상을 찾는 이방 종교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생각하는 여러분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당에 나와서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설교 들으면서 아멘하고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여러분의 참된 모습입니까? 아니면 오늘도 불만이 가득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왜 좀 편히 살도록 해주지 않는지 불평하는 것이 참된 모습입니까?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싫어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으로 붙드시고 진리의 세계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가 행한다고 하는 그 무엇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붙들어서 견고히 세우고자 하시는 신앙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데려가시면서 그들이 원망할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원망을 받으시면서 이스라엘을 데려가십니다. 원망과 불평이 없는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이라는 자신들의 속성으로는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그 사실에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들에게 보이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현실은 그동안 살아왔던 모든 것이 자신들이 사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잘 먹든 못 먹든, 힘들든 편하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음을 알게 됨으로써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비결을 배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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