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마가복음 4:35-41)
<설교>
본문은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기적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해석하려다보니 결국 믿음지상주의나 믿음만능론과 같은 말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풍랑도 잠잠케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어떤 풍랑이 닥쳐와도 걱정하지 말고 예수님만 믿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와 같은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도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믿음이 적어서 그렇습니다’라며 기도하는 본인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과연 본문이 이런 얘기를 하려고 기록되었겠습니까? 이것은 신앙의 목표와 방향을 오직 자신의 문제 해결에만 두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으면 된다’는 말이 듣기에는 아주 신앙이 좋은 말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또한 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에서 당하신 모든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의 불의함을 발견하고 모든 불의에서 건지기 위해 오신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소위 믿음 만능론과 같은 것은 도무지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하셨지만,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배에 타고 계신데도 불구하고 풍랑 때문에 불안해하고 무서워 떨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정말 믿음이 있다면 풍랑 때문에 무서워 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무서워했다는 것이 책망의 이유는 아닌 것입니다.
38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의 이런 모습은 마치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부르면서 ‘왜 나를 도와주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을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으로만 바라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과연 그러한 분이시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예수님이 아니라면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전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신자가 위기에 처해도 전혀 도와주지 않는 분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신자를 그런 식으로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기에서 건지기도 하시고, 어떤 사람은 마치 버려두신 것처럼 방치하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선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에는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예수님을 믿으면 오던 풍랑도 나를 비켜갈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고, 신앙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에는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풍랑은 제자들을 위협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는 현실인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결국 풍랑을 잠잠하게 하긴 하셨지만 그것은 제자들의 애원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그에 대한 답을 발견하는 길로 이끄신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들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일이 분명 여러분의 성에 차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갖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한 일이 따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여러분 나름대로 가지고, 그 답에 부합된 선한 일을 나에게 행하시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무서워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하게 해 줄 것임을 믿지 못한 것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이 믿음이 없었던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지 못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우리 인생을 도와서 우리가 원하는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다면 풍랑이 있다고 해도 잠잠케 하시는 것도 예수님의 뜻이고 풍랑에 죽게 하시는 것도 예수님의 뜻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풍랑이 있을 때 ‘내가 죽게 되었는데 왜 도와주지 않습니까?’라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풍랑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까? 라고 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 믿음은 항상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믿음의 세계가 달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원하고 기대하는 것은 전혀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의 세계를 하찮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멸시하고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이 믿음의 세계가 장차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세계입니다.
믿음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는 분으로 바라본다면 그 역시 예수님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 자에게 믿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제자들을 향한 책망은 바로 이런 의미의 책망입니다.
풍랑으로 인해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 때 예수님은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풍랑도 예수님을 깨우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정도로 깊은 잠을 주무셨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렸던 세계가 바로 풍랑에도 흔들림이 없는 고요한 세계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세상에 있었지만 그 마음은 항상 천국에 있었기 때문에 풍랑도 예수님을 흔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예수님의 세계로 제자들을 인도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왜 무서워 하느냐?’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을 때 제자들은 ‘이제 살았다. 예수님 감사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엄청난 위기로 인해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기도했더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대개 ‘역시 기도가 제일이다. 예수님 감사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풍랑이 잠잠해졌다는 것이 관심이 아니라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에게 관심을 두게 됩니다. 40-41절의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풍랑으로 인해서 제자들에게 일어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을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한 앎은 모두 사라지고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으로 새롭게 시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수님은 모두 지워지고 새롭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풍랑이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일하시고 이러한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모든 마음을 쏟도록 하기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 힘으로 견딜 수 없는 환난과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러한 환난과 어려움에서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시기에 나를 이러한 길로 인도하시는가?’라는 물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제자들이 만난 풍랑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을 갖게 한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이러한 은혜로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지금 당장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마약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지금 당장의 고통을 해결받기 위한 것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은총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풍랑에서도 예수님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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