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설교>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3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하나로 당시 자신이 상상하는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헛된 기대를 무너뜨려 버립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이 곧 인간이 가지고 있는 헛된 생각이나 꿈을 모두 버릴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지금 우리들의 귀에는 십자가라는 말이 구원의 의미로 들리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반국가적인 죄인을 사형시키는 형틀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죽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숨을 쉬며 살아있는 이상 자신을 향한 마음을 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명에 속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살아있는 우리가 어떻게 죽어야 합니까? 스스로 목숨이라도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죽게 하심으로써 죽음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항상 신자를 죽는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이지 사는 길로 이끌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도 인간을 살리기 위한 용도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고, 결국 우리를 죽이는 말씀들을 정 반대인 살리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는 생명의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죽이시는 것이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1절의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에서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는 말도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생명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도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몸의 죽음이 아닌 십자가에서의 자기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몸은 살아있으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에게만 보일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한 신자에게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보석으로 치장된 호화로운 나라일까요?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없습니다. 금은보석은 세상에서나 가치 있을 뿐 하늘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늘나라를 보석과 같은 것으로 표현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도구 삼아 하늘나라의 영광됨을 표현하고자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생명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세상의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귀하고 영광된 것입니다. 그러한 생명의 가치를 알아보는 신자라면 그야 말로 자기가 부인된 사람이고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자기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가치관의 변화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하나님으로 인해 부요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죽으면 가는 좋은 곳이 아니라, 신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다스림을 받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주의 백성으로 존재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이 볼 수도 없지만, 세상의 시각에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스스로 신자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대다수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난이 있고, 자기 부인이 있고, 십자가의 죽음이 있는 그러한 나라가 무슨 매력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한 신자에게만은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나라야 말로 가장 복되고 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자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부요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유에 주눅 들지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오직 생명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은 신자에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1절의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제자들은 어떤 길로 이끌어 가실지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죽는 길입니다.
베드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은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을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 오신 메시아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셔서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고 세상의 중심에 세우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죽이기 위해 왔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 당시의 제자들은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후 성령이 오심으로써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런 말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말씀으로 다가오기 십상입니다. 내 몸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신비고 비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오직 신자에게만 허락되어진 은혜이고 복인 것입니다.
눅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를 지어서 많은 소출을 거뒀습니다.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소출을 거둔 부자는 속으로 기존의 창고를 허물고 크게 지어서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쁨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 한마디로 노후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으니 남은 여생은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있는 그 부자의 영혼을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이 데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자의 어리석음이고 오늘 우리의 어리석입니다. 우리의 목숨이 창고에 가득히 쌓은 재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돈이 곧 부요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돈을 가득히 쌓아둔다고 해도 세상이 볼 때는 부요한 자일지 모르나 정작 자신은 배부르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배고픈 상태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악함을 보게 하시고 죽음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이 참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창고에 가득한 곡식을 바라보며 남은 여생을 편하게 살겠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입니까? 세상이 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부자의 문제는 자신만을 바라봤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십자가는 이러한 우리를 끌어서 내가 아닌 예수님의 죄 없는 죽음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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