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 11:11-14)
<설교>
예수님께서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나무가 말라죽은 얘기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물론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목적으로 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열매가 없다는 것은 곧 나무로서의 쓸모가 없음을 뜻합니다. 나무로서 쓸모가 없다면 제거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당시는 무화과 열매가 맺힐 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맺힐 때가 아니었기에 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따라서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나무를 저주하시고 나무가 말라죽게 한 것은 비상식적일로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보신 후에 제자를 데리고 베다니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또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신 일이 15절부터 등장합니다. 그리고 다시 성전에 나와서 길을 가실 때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내용의 순서가 조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성전을 둘러 보셨을 때 분명히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셨을 것인데, 왜 그때는 가만히 계셨다가 두 번째 들어가셨을 때 내어 쫓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성전에 장사꾼들이 넘치는 것을 보시면서 이스라엘이 곧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와 같은 운명임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종종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잎만 무성하고 예수님이 기대하는 열매가 없어서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가 곧 유대인들의 실상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이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게로 가셨다는 것도 조금 다른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장하셨다는 것은 배고픔을 의미하는 말인데, 이 말이 실제 배고픔을 의미하는 말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장하다는 말에는 갈망하여 찾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한 유명한 말이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몇 번의 승리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시장해서 무화과나무를 향해 가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향해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성전을 둘러보니 원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없는 유대인들이야 말로 저주 받을 자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저주받을 자라는 것은 무엇으로 드러났을까요? 이것은 당시 성전의 형편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성전은 장사하는 사람으로 넘쳤습니다. 즉 제사를 드리면서 제물의 피로 말미암아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라는 종교 의식에만 목적을 두었던 것입니다. 종교의식, 즉 종교 행위만 있으면 다 된다는 식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이 성경에 예언된 어린양의 죽음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마지막 장자 재앙에서 살아난 사람은 이스라엘도 애굽도 아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민족을 초월하여 어린양의 피를 믿는 자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월절을 세우시고 유월절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는 규례를 세우기도 하십니다. 이것은 유월절이라는 규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하는 재앙에서 자신들을 살린 것은 어린양의 피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월절이면 성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면서도 어린양의 피가 아닌 제사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이 유지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용서도, 은혜도 다 팽개친 채 다만 제사 드리는 일에만 열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의 실상과 같은 것이고, 이것이 곧 저주 아래 있는 것임을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었는데 저주를 하시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유대인이 저주 아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나무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나무는 저주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은 죄로 인해서 이미 저주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창 3:17절을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은 이미 저주 아래 있는 상태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땅에 속한 모든 만물은 그가 무엇을 한다고 해도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면 저주에서 해방되고, 악하게 살면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세상은 이미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 아래 있는 세상에서 죄로 인해 저주에 속한 것이 인간의 본질인데 그러한 인간에게서 구원의 근거가 되는 의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자기 원칙을 가지고 ‘착하게 살았는데 왜 지옥 가는가?’라고 하나님께 반박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착하게 살았는데 지옥 간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일까요? 하나님이 너무하신 것일까요?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있든 없든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세상에 속한 피조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저주 아래 있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기대하신 열매는 세상의 이치나 자연과는 상관없는 열매였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고통이 주어지게 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열심히 했는데 고통이 주어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고 그래서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아직 열매가 없을 때인데 왜 저주합니까?’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항변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저주 아래 있음을 생각한다면 저주는 당연한 것입니다. 때에 따라 열매를 맺었다고 해서 저주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어떤 일이 주어지든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했다면 그것은 주의 은혜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다만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본질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럴 때 자신에게 어떤 고통이 주어지든 모든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넘치는 용서의 은총만이 크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열매인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저주에서 구출하신 예수님의 은총만을 보게 합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관심을 두게 되면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재난과 고통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신자를 설마 고통을 겪게 하시겠냐는 계산이 앞선 것입니다. 믿음을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억울하다’는 불평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열매는 믿음으로 인한 열매입니다. 이 열매는 우리의 상식과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즉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 가능한 열매가 아니란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타나야 하고 맺어져야 하는 열매입니다. 때가 되어야 열매가 있고 때가 되지 않으면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내가 열심을 내면 맺어지고 열심을 내지 않으면 없는 그런 열매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믿음에 의한 열매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주에 있는 우리를 구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온 마음이 점령당한 채 이제는 자신이 살아가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고백하면서 고통에서도 주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이 원하신 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우리의 능력으로 맺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열심, 능력과 상관없이 오직 믿음에 의해서 맺어지는 열매일 뿐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하는 것 또한 믿음과 상관없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주에 갇힌 인간의 실상을 보지 않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주에 갇힌 인간의 실상을 보게 되면, 자연히 저주에 갇힌 나를 구출한 분에게 관심이 가게 됩니다. 내가 아닌 나를 건진 분에게 모든 관심이 가는 이것이 믿음의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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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강) 마가복음 11:15-19 강도의 굴혈
(63강) 마가복음 11:1-11 주가 쓰시겠다
